고전이란<4>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천하무적의 영웅 ‘아킬레우스’다. 그러나 시인은 아킬레우스보다 트로이의 ‘헥토르’를 더 사랑한 것 같다. 비록 아킬레우스와의 전투에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가 죽지만 공동체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애정은 영웅 아킬레우스에게서 전혀 찾을 수 없는 그만의 모습이다.

타고난 용기와 용맹을 자랑하는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 신의 모습에 가깝다. 그런데 훈련으로 쌓은 용기, 그래서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된 헥토르의 용기는 우리네 인간 중 영웅이라 칭해지는 사람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헥토르가 전장에 나설 수 있었던 명분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출발점은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신에 대한 의무감이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훈련을 통해 용기를 배운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의무감에 복무하며, 그 과정은 공동체의 사랑으로 표출된다.

◆‘아레테(탁월함)’를 향한 삶
이처럼 고대 이래 영웅들은 자신에 대한 의무감을 이행하면서 자신과 공동체에 봉사해왔다. 이것이 흔히 ‘덕(德)’으로 번역되는 ‘아레테(arete)’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의미는 ‘탁월함’이다.

올림피아 제전에 출전한 선수에게는 잘 달릴 수 있는 힘과 기술,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열린 비극경연대회에서는 뛰어난 글쓰기 능력, 아고라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정책을 이야기할 때는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뛰어난 수사력이 ‘아레테’였다. 그래서 이 단어는 도덕적인 측면은 물론 지적, 육체적, 실용적인 측면까지 다 적용되었다.

‘아레테’를 향한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로망은 대단했다. 봄·가을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벌인 비극 및 희극 경연의 우승자에게 보여준 시민들의 찬미는 물론 올림피아 제전 및 판(Pan)아테네 제전의 우승자들은 모두 탁월함의 대상이 되어 시민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제전에서 1등에게 밀린 선수들은 2, 3위를 기록했다 하더라도 아테네의 대로를 활보하지 못하고 골목길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듯 다녀야 했다. 탁월함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환호는 1위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을 얻기 위해 그리스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했을까? 우선 스포츠 제전의 우승을 위해 그들은 도시마다 건설되어 있는 체육관에서 틈나는 대로 육체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장소는 젊은이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나이대의 시민들이 자신의 몸을 가꾸기 위해 매일같이 연습을 한 곳이라고 한다. 연습을 나타내는 그리스어는 멜레테(melete)이다. 멜레테(끊임없는 훈련과 연습)만이 육체적 탁월함, 아레테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탁월함’
플라톤의 저작 《향연》에도 ‘탁월함’의 근거인 ‘연습(멜레테, melete)’의 개념이 등장한다. B.C. 416년 비극경연에서 우승한 아가톤을 축하해 주기 위해 친구들이 아가톤의 집에서 ‘심포지엄(향연)’을 연다. 심포지엄은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학술대회가 아니라 가볍게 술을 마시면서 한 가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향연》의 첫 문장은 소크라테스가 참석한 아가톤의 ‘향연’ 자리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는 아폴로도로스가 어떤 남자에게 “나는 자네들이 묻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꽤 되어 있다고 생각하네”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말 할 내용에 대해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한다. 남을 설득하기 위한 연설이든 토론, 내지 설명을 준비 없이 성공적으로 전달하거나 설득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래서 《향연》은 이 책의 주제인 ‘사랑’과 ‘사랑에 대한 지적 깨달음’ 외에 ‘연습’에 대해서도 강조한다고 해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탁월함’을 말한다. 사유와 습성의 탁월성을 거론한 그의 주장도 ‘끊임없는 연습’만이 아레테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고전은 ‘아레테’를 만나는 공간
‘탁월함’의 현대적 의미는 고대 그리스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육체적 탁월함도 필요하고 지적, 윤리적 탁월함도 똑같이 필요하다. 육체적 탁월함에 대한 접근도 고대 그리스 때와 다르지 않다. 운동장과 체육관을 매일같이 찾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지적, 윤리적 측면의 ‘아레테’는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말하는 책을 통해서 가능하다. 단순히 지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적 탁월함은 전문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 측면의 탁월함까지 같이 논의하게 되면 답은 ‘고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게 해줄 대상은 고전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훈련과 연습처럼 꾸준히 읽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 체화의 과정을 거쳐야 자기 것이 된다. 단순히 머리에 담는 것은 사라지기 일쑤다. 그러나 ‘마음의 떨림’을 경험하게 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의 떨림은 ‘연습’과 ‘훈련’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근대 이후 서양의 귀족 및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자식을 중등학교(그래머 스쿨)에 보낸 것도 같은 이유다. 문법은 꾸준히 노력해야 체득되고, 그리고 공부한 만큼만 알게 된다. 그래서 이 과정을 통해 성실과 정직을 배운다고 한다. 고전이 바로 이 두 ‘덕목’을 배우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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