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30 10:45 (금)
[칼럼]고전, ‘행간의 의미’ 찾는 보물찾기
[칼럼]고전, ‘행간의 의미’ 찾는 보물찾기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5.05.31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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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1>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하나이다”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엄의 말이다.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그답게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은 그에게 경계가 없다. 둘은 하나이기도 하고 또 둘이기도 하다.

‘현대’라는 단어가 수식어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예술은 필자 같은 범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현대무용’도 매한가지다. 이 때 커닝엄은 “나는 자신이 결코 비표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누구에게 억지로 무엇을 표현시키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관객들이 감상하는 각도에 따라 나의 작품을 감상하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보이는 그 자체를,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을 구별하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고 즐기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이 또한 참 어려운 요청이다.

서양의 사고체계는 고대 그리스 이래 ‘이론’과 ‘실천’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이뤄져 내려왔다. 따라서 커닝엄의 이야기처럼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바라본다는 것은 동양적 사고를 함께 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려운 것은 커밍엄의 현대무용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일컫는 문학·예술 작품들도 매한가지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전은 모두 그 경계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대상이다.

◆스티브 잡스 - 문자와 문자 사이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설명한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그 연설 이후 우리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리드 대학교 1학년 재학 중에 중퇴하고 학교의 승인 아래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찾아 듣는 행운을 갖는다.

“자퇴 후 정규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 수업을 들어 한번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각기 다른 글자를 조합하며 여백의 폭을 다양화하는 방법을 배웠고, 위대한 활판술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칼리그래피는 과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지녔고, 예술적인 절묘함으로 저를 매혹시켰습니다.”(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 중에서)

스티브 잡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백’이었다. 문자와 문자 사이. 그 ‘행간’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글자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글자 그 자체가 아니라 공간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통해 화려한 그래픽을 즐기게 되었고 그 여파는 윈도우즈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용자까지 확대되었다.

◆모차르트 - 음표와 음표 사이
행간 내지 여백은 문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음악의 천재들인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그 여백을 강조한다.

모차르트는 “음과 음 사이 쉼표, 침묵의 빈 공간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음표와 음표 사이의 거리감과 그 사이에 있는 쉼표의 구성이 음악을 완성시킨다는 이야기다.

베토벤도 “음과 음 사이 침묵을 들을 수 있을 때만이 비로소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며 “내가 음악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우주, 자연)에서 들려오는 악상을 시인은 시를 통해서 음악가는 음표를 통해서 적는 행위일 뿐이다”고 말했다.

강신주의 책 《감정수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 : 음 하나 하나를 충분히 눌러서 무겁고 느리게 연주하라는 작곡가의 명령이다. 그래서 음표 사이사이 침묵의 공간에 음이 무겁게 밀려들어갈 수 있다. 공백을 채우듯이, 공허를 몰아내듯이”

이처럼 음표 사이의 공간과 지시어, 그리고 쉼표가 어우러지면서 위대한 음악이 완성되는 것이다.

◆고전은 행간의 의미 찾기
수천 년 동안 인간을 위기에서 탈출시켜주면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전은 다차원적 해석이 가능하다. 읽는 사람에 따라, 읽는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와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그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글자의 사이, 음표의 사이 그리고 여백과 쉼표가 다른 해석의 여지를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전은 ‘행간의 의미’를 찾는 보물찾기이며 그림이나 악보의 여백을 즐기기 위해 떠나는 정신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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