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웅섭 금감원장 “내부통제 강화 요청”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영생을 ‘욕망’한 길가메쉬
4000년 전쯤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한 인류 최초의 문학작품, 길가메쉬 서사시는 반인반신인 길가메쉬의 성장, 용기, 두려움,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고 싶은 욕망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초기 문명인 ‘우르’를 건설한 길가메쉬의 초기 모습은 폭군이다. 그의 폭정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신에게 그를 막아줄 것을 요청한다. 사람들의 뜻을 받아들여 신들은 길가메쉬 만큼 용맹스러운 동물 같은 인간 ‘엔키두’를 보낸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자신을 처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엔키두와 친구가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듯 기뻐했으나 엔키두의 죽음을 맞이한 뒤, ‘두려움’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길가메쉬는 불멸을 욕망한다.

방황하던 그는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대홍수 때 방주를 만들어 지구상의 생명체를 살린 ‘우트나피시팀’(바빌로니아의 노아)을 찾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지만 그마저도 잠든 사이 뱀에게 빼앗기고 마는 길가메쉬. 필멸하는 인간이 불멸을 꿈꾸면서 벌인 신에 대한 휴브리스(오만)의 결과일 것이다.

분노를 일으킨 아가멤논의 ‘욕망’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납치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구하기 위해 그리스 연합군은 소아시아 반도 끝 트로이를 향한다. 연합군의 총대장은 테베의 아가멤논 왕. 3000년 전쯤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이 전쟁이야기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욕망에 배반당해 분노하는 영웅의 성장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의 주제는 ‘분노’이다. 그 분노의 시작은 영웅 아킬레우스가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으로 얻게 된 아름다운 여인 ‘크리세이스’ 때문이다. 그리스 연합군 최정예 용사인 아킬레우스의 전공을 아가멤논 왕도 부인할 수 없었지만, 아킬레우스가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한 것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즉 아가멤논은 욕망에 사로잡혀 ‘크리세이스’를 빼앗는다.

그러나 전리품을 아레테(arete, 탁월함)에 대한 보상으로 여겼던 고대 그리스의 전사, 그것도 영웅 아킬레우스에게 사령관 아가멤논의 행동은 모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불참하며 파업을 벌인다.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 의해 전사하기 전까지 그의 손에는 칼과 방패가 들려 있지 않았다.

아가멤논의 치졸한 욕망의 선택이 부른 화다.

금감원의 욕망에 대한 절제 요구
금융업은 태생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관계하고 있다. 불멸에 대한 욕망이나 전리품에 대한 욕망만큼 강렬한 돈에 대한 열망은 인류가 문명을 만든 이래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이후 모든 현자들은 욕망에 대한 절제를 현명한 인간의 덕목이라고 말해왔고, 경전에서도 부에 대한 욕망을 철저히 경계하도록 적고 있다.

그러나 터부시 되던 욕망은 근대 이후, 인간 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낸 원천이 되면서 종교적 규율의 틀에서 벗어나 합법의 틀 안으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합법의 틀거리의 핵심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이었다.

사연이 그렇다보니 금융회사들은 인간의 지나친 욕망을 제거하고자 하는 감독기관과 갈등관계에 놓인다. 가깝게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그리고 1998년 우리나라의 IMF사태 등은 절제하지 않은 금융자본과 관리하지 못한 행정당국의 합작품으로 만들어진 파국적 현상이었다.

따라서 감독기관의 수장들은 항시 금융회사에게 ‘내부통제’를 요청해왔다. 내부통제가 강화되면 그만큼 금융사고의 개연성이 줄기 때문에 감독기관이 시장에 개입할 확률도 줄게 된다.

이 같은 점에서 취임 후 처음 은행장들과 만찬을 가진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내부통제를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금감원이 코치나 감독이 아니라 심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은행들의 적극적인 협력도 부탁했다.

그러나 감독기관과 금융회사는 이해의 경계선에 존재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금융회사의 입장에선 제도와 정책 속에서 최대한 이익을 내려 할 것이다. 그리고 감독기관은 제도와 정책의 허점과 부족한 점을 찾아 메우려 한다. 그 활동이 경계에서 만나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마찰을 줄이고 혁신을 일궈내고 싶은 기관장은 화법을 바꿨다. 금융의 또 다른 얼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금융의 또 다른 얼굴 ‘신뢰’
금융업이 중세 이래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신뢰’라는 포기할 수 없는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론 ‘욕망’의 얼굴이 시민들을 탐욕에 빠뜨려 참혹한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무너진 시스템을 다시 복원시킨 것은 ‘신뢰’였다.

‘욕망’과 ‘신뢰’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둘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마치 금제(禁制)를 어기려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과 금제 선언에 대한 인간의 무한 신뢰가 창세기 이후 인간의 두 얼굴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진 원장의 주문은 ‘욕망’이 아니라 ‘신뢰’에 방점을 찍은 이야기로 풀이된다. ‘신뢰’를 하면 시스템의 보정능력은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자율적 보정능력이 커지는 만큼 금융개혁의 폭과 깊이도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고 진 원장은 말한 것이다.

‘욕망할 것인가? 아니면 신뢰할 것인가?’의 이분법이 아니라 욕망과 신뢰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방법론과 기준을 지금부터 만들어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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