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로는 10년 뒤 금융산업 공멸할 수도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철옹성’이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 준비된 답변과 의도적인 질책까지 나왔다. 관료적 특성이 제대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일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금융지주회사의 전략담당 임원 간의 회의에서 오고간 이야기에 대한 느낌이다.

역시나 금융지주회사는 ‘욕망’에 충실하려 했고, 금융위원장은 ‘신뢰’를 주문했다. 그러나 금융지주사 임원들은 금융회사가 가져야할 ‘욕망’을 제대로 펼쳐 보이지 못했고, 금융위원장도 교과서적 ‘신뢰’ 이상을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임 위원장의 준비된 답변은 원론적으로 모두 옳다. 대한민국 금융을 챙겨야 할 위치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쉽다. 아쉬움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느낌을 추적해 본다.

물론 아쉬움의 원천은 의도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은행장들과 첫 만찬 자리에서 은행의 자율적인 내부통제를 주문한 바 있다. 그리고 금융위원장이 직접 지주사 전략담당 임원들을 대상으로 그동안 준비하고 검토한 금융권의 민원을 정리해서 전달하였다. 연속적인 강한 모습이다. 그리고 금융감독에 대한 강한 의지다. 그런데 임 위원장의 말은 가이드라인이 된다. 금융회사들이 이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임종룡 위원장의 준비된 답변
은행 역사 110년 이래 처음으로 1%대의 초저금리 시대가 열렸다. 전무후무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예대마진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 그런데 현재 금융권의 예대마진율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다른 나라의 예대마진율을 거론하면서 우리의 마진율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볼멘소리 정도였는데, 이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 무엇일까?

그리고 수수료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2일 임 위원장과의 자리에서 나왔다. 이 자리에서 임 위원장은 “수수료 규제에 대한 불만이 많다 길래 따져보니 그동안 금융당국이 규제한 수수료는 전체 은행 수수료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나머지 75%는 은행들 스스로 다른 은행과의 경쟁을 통해 깎아주고 있는 수수료다”라고 말했다.

숫자로 보면 25%다. 나머지 75%에서 돈 벌면 되지 않겠는가.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수익이 나는 수수료에 대해 규제가 있다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복합점포에 대한 지주사 의견에 대해 보험업계의 불만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임 위원장은 충분히 협의해서 고객의 자산운용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 대목은 고객 정보보호 미숙에 대한 벌칙이라며 지주사 차원의 정보공유를 제한한다고 말한 것처럼,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사의 욕망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싶다. 아니면 경영실태평가 2등급 이상이라는 비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 편입 조건을 완화해 달라는 보험업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어서 충분한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땠을까?

미숙한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가 그리스 연합군의 아킬레우스에 의해 죽으면서 트로이 전쟁은 막바지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 대하 서사시의 클라이막스가 이어진다.

고대 그리스의 전통에서 죽은 자의 시신에 대한 예의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를 삭이기 위해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훼손시킨다. 이를 바라보는 트로이 진영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참담했을 것이다.

결국 깊은 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은 적진인 아킬레우스의 진영을 찾는다. 그리고 자식 정도의 나이 밖에 안 된 아킬레우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시신을 돌려줄 것을 요청하고, 이 대화 속에서 아킬레우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프리아모스의 눈물에 같이 슬퍼하면서 시신을 돌려주는 것은 물론 장례가 끝날 때까지의 휴전도 선언한다.

이 과정이 《일리아스》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한다. 프리아모스의 정중한 요청과 둘 간의 성숙한 대화,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관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 위원장과 금융지주사 임원 간의 간담회에서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감독대상과 감독주체 간의 의례적인 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웅변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쩌면 정중하고 성숙하고 관용의 태도를 서로가 가질 수 없는 대상이자 주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해도 될는지 걱정이다.

10년 뒤 은행, 증권사, 보험사들은 안녕하실지
10년 뒤에는 저널리즘 로봇이 기사를 작성하고 각종 센서와 ICT(정보통신기술) 환경이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빅데이터와 딥 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인공지능이 새로운 사회로 우리를 안내한다고 한다.

쌓여가는 빅데이터는 유의미한 고객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딥 러닝은 인공지능의 수준을 계속 상승시킨다. 그리고 인터넷 네트워크가 가설되지 않은 곳은 초대형 드론이 커버하면서 전세계가 네트워킹으로 묶이고, 가상현실 기술은 고객이 동의하는 순간 필요한 모든 정보를 움직일 때마다 제공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에서 은행은 어떤 업무를 하고 있을까? 증권·보험사는 무슨 상품을 판매하고 있을까? 종이화폐가 더 이상 필요할까도 의문이다. 모든 결제가 기술적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질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오프라인 매체는 유의미한가?

앞으로 10년 쯤 뒤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회사들 중 몇 개나 영업을 할런지 아무도 모른다.

1%대의 초저금리 시대 보다 더 새롭고 생소한 환경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중국은 비금융회사 출신 인터넷뱅킹 및 결제시스템이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의 금융굴기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도 걱정이다. 경제가 굴기하듯이 금융과 정보통신이 융합된 모습으로 굴기하는 그림은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머물면?
감독대상과 감독주체는 서로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감독주체는 항시 미네르바의 부엉이 마냥 해질녘이 되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감독대상들이 움직임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독주체는 감독대상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는 있으나 예단하고 선제적으로 감독행위를 할 수는 없다. 감독대상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에 대한 정리된 입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10년 뒤는 어떨까?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이 다가오고 있다. 금융산업 종사자 모두가 애정이 없다면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금융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