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쫑긋 세우고 발끝은 곧추 세운 CEO의 현장 행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현장경영’과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문구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기사들이 넘쳐난다. 그 범위는 꼭 금융권에 국한된 것도 아니며 경제계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정치, 행정, 경제, 산업 등 전 분야에 해당된다.

KB국민은행의 윤종규 행장이나 이광구 우리은행장, 조용병 신한은행장, 김병호 하나은행장. 누구를 딱히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은행장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도시와 지방을 구분하지 않고 현장을 찾고 있다. NH농협은행의 김주하 은행장이나 권선주 기업은행장의 행보도 현장을 빼면 표현이 안 될 정도다.

이밖에도 삼성생명의 김창수 사장은 현장중심 경영체제 구축을 위해 생보협회가 주관하는 컨설턴트 시험에 응시한 것이 화제가 되었고, 한화의 김연배 부회장은 한화생명의 대표이사로 부임해 6개월 만에 현장경영에 나선다고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처럼 ‘현장’이라는 단어는 현대 경영계의 핵심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한마디로 ‘현장경영 전성시대’다.

일본이 잘나가던 시절, 일본의 경영체제를 대표하던 단어가 ‘현장경영’이었다. 조그만 업체의 사장까지도 현장을 찾으며 고객의 불편을 살피던 그들의 모습은 국내 방송에도 심심치 않게 보도되기도 했다. 그중에도 도요타 자동차의 사례는 자주 언급되던 현장경영의 사례였다.

오노 다이치 전 도요타자동차 부사장. 그는 도요타방식을 체계화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해 ‘왜’를 다섯 번 반복하라”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왜’라는 질문은 현장을 찾는 주문과 같은 말이다. 현장을 가지 않고 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요타맨들은 “사람에게 묻지 말고 물건에게 물어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한다. 물건이 스스로 움직여 내 앞에 다가 올수 없는 만큼 사람이 현장을 찾게 되어있다.

왜 현장인가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CEO들은 모두 사무실을 박차고 현장을 외치고 있다. 굳이 《한서(漢書)》 〈조충국전(趙充國傳)〉에 인용된 ‘백문일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식상한 한자어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현장은 세상사에서 많은 일의 모범적 사례를 알려주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장은 《대학》에서 말하는 ‘격물치지’ 그 자체다. 현장은 사물의 이치를 구명하여 자기의 지식을 확고히 한다는 격물치지의 이치를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해주는 것이다.

격물치지의 기본 정신은 이치를 제대로 안다는 것이다. 유학에서 이치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글을 읽는 행위로 이뤄지지 않는다. 좋은 선생을 찾아 묻기도 해야 하고 깊은 생각을 거듭하면서 풀어내기도 해야 한다. 글, 즉 텍스트에서 벗어나 이치의 깊은 뜻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찾아서 행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무실에서 보고서나 기획서를 본다는 것은 텍스트를 읽는 행위이고, 그 텍스트에 담긴 깊은 뜻은 현장을 찾아서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짜인 이론이라도 현실을 다 담아낼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잘 만든 보고서도 전체의 내용을 다 담아낼 수 없다. 오죽하면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현실에서의 한계에 부딪치자 ‘마찰’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려 들었겠는가.

발굽소리와 파도 뒤에 부는 바람
현장을 찾는 이유가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보다 큰 이유가 현장에 담겨 있다.

영국의 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은 독일 통일을 일궈낸 비스마르크를 예로 들면서 “정치적 천재는 역사의 발굽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 말이 지나갈 때 기수의 옷자락을 낚아챌 줄 안다”(《Mr. Churchill in 1940》)고 말한 바 있다.

이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읽어내기 위해선 멀리서부터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즉 말의 발굽소리는 땅에 귀를 대고 있어야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그 소리를 추적해야 그 방향성까지 온전히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연전에 개봉한 영화 중 《관상》이라는 영화에서 배우 송광호가 연기한 관상쟁이는 “나는 파도를 볼 수 있지, 그 뒤에 부는 바람은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파도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그런데 그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대정신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발굽소리는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이다. 사무실에서 아무리 훌륭한 안테나를 세우고 레이더를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느끼는 감과 듣는 정보를 따라갈 수 없다. 또한 그 감의 뒤에 숨겨진 다양한 함의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비스마르크와 역사의 발굽소리
다시 비스마르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통일전 독일은 많게는 250여개의 정치단위의 집합체였다. 독일어나 독일인은 존재해도 독일이라는 나라이름은 존재하지 않던 시절, 비스마르크는 다양한 정치체의 통일을 도모한다.

좌우에는 강대국(프랑스와 러시아)이 포진하고 있는 상황. 통일국가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프랑스, 그리고 짜르를 중심으로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던 러시아. 그리고 같은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프로이센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오스트리아.

국제정치의 미세한 흐름까지 놓치지 않았던 비스마르크의 외교행보와 순차적 전쟁 결정 등으로 결국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지역의 통일을 일궈낸다. 이 모습을 이사야 벌린은 놓치지 않고 역사의 발굽소리로 표현했던 것이다.

기회를 낚아채기 위한 CEO의 낯선 감각
CEO들이 현장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비스마르크가 소원했던 독일의 통일만큼 모든 CEO들은 경영에서 성과를 거두고자 한다. 그 성과를 판가름할 결정적 판단력에는 현장감이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느낀 점(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모두 이해하고 조율하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CEO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와 관련된 ‘바람’만큼은 CEO들의 통찰력만큼 보게 된다. 그리고 최소한 그 기회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사야 벌린의 말처럼 ‘기수의 옷자락’을 낚아채기 위해서, 최대한 귀를 쫑긋 세우거나 발끝을 곧추 세우고 기다린다는 말이다.

특히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나 소감을 매일 노트에 적는 CEO라면 더 그러하다. 낱장에 적힌 메모 하나하나에서 방향성을 읽어낼 CEO의 눈에는 경계에서 이는 발굽소리와 흙먼지가 또렷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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