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3>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1966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이래 대학 신입생들의 손에 항시 들려 있던 책이었으며 연전에는 30년 전쯤을 무대로 만들어진 영화에 소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책이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을 읽은 이들은 별로 없다. ‘읽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라는 고전의 정의에 딱 맞는 책이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야 꼼꼼히 따져 읽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책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 중간에 내려놓기 십상인 책이었다. 다만 1장 마지막 구절은 그래도 머릿속에 담아 아는 체한 기억들은 다들 있는 책이기도 하다. 추억을 되살리는 차원에서 그 구절을 인용해 본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어렵게 느껴졌던 것일까. 일단 그 책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의 강연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강연을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영국의 역사 및 유럽사에 나름 밝았던 사람들이다. 사실 우리에게 노르만인들이 1066년 영국 땅에서 벌인 해이스팅스 전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밖에 익숙하지 않은 역사가들의 이름(부르크하르트, 크로체, 랑케 등)과 그들이 이야기가 몰입을 방해한다. 즉 그 책의 텍스트(문장)보다 그 책에 담겨 있는 컨텍스트(문맥, 배경)에 약했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 것이다.

쉬운 예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사람이 드라마를 보게 됐을 때 대부분이 느끼는 점이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지만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그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드라마의 흐름, 즉 문맥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전이라고 말하는 책들은 모두 그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신화와 당대 지중해에서 벌어진 역사 내지 설화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따라서 서사시의 익숙하지 않은 호흡보다 기초적인 문맥의 어려움 때문에 손에 쉽게 쥐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가장 많은 컨텍스트를 담고 있는 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성경》이다.

◆유대인의 숨은 코드 찾기
성경의 뿌리는 유대인들의 역사를 담은 경전인 《토라》이다. 토라는 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으로, 곧 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말한다. 흔히 모세오경이라고 말하는 토라를 읽는 것을 유대인들은 ‘파르데스(Pardes)’라고 말한다. ‘파르데스’는 이상적인 공간인 파라다이스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경전을 읽을 때 천상의 파라다이스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같은 전통이 만들어진 것은 B.C. 586년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을 때라고 하는데, ‘장소’로서의 예루살렘이 파괴되어 더 이상 성전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자, 유대인들은 ‘토라’ 연구를 통해 성전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 같은 전통 속에서 유대인들은 4가지 방식으로 그들의 경전을 읽는다고 한다.

서울대 종교학과의 배철현 교수의 책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에 따르면, 그 첫 단계가 페샤트(Peshat)이다. 히브리어로 ‘단순한, 평이한’이라는 뜻을 가진 ‘페샤트’는 축자적 의미의 책읽기를 말한다. 즉, 실제 일어났던 사건 그 자체를 말하며, 우리가 흔히 텍스트 그 자체를 읽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레메즈(Remez)’로 힌트 내지 단서를 의미하는 말이다. 문학적 용어로는 ‘은유와 비유’를 뜻한다. 예컨대 “예루살렘은 도시다”라는 말에 대해 페샤트적으로 해석을 하면 말 그대로 도시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레메즈적으로 해석하면 알레고리(비유)적으로 믿음의 대상인 예루살렘(“예루살렘은 교회다”)을 뜻한다고 한다.

셋째는 ‘데라쉬(Derash)’적 해석 방법이다. 히브리어로 ‘연구하다, 공부하다’라는 뜻을 가진 데라쉬적 방법은 앞서 말한 컨텍스트를 감안한 해석 방법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서 안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과 인물, 그리고 다른 경전과의 연계 등을 고려해서 해석을 하게 된다. 이 방식으로 해석을 하면, 예루살렘은 경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구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예루살렘은 영혼이다”라고 해석한다고 한다.

마지막 숨은 코드를 찾는 방법은 히브리어로 ‘비밀’을 뜻하는 ‘소드(Sod)’ 방식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성서 안에 인간이 꼭 알아야 할 암호를 숨겨둔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비밀이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열쇠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성경 전체에 담긴 궁극적 코드는 ‘사랑’일게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천국’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에 담긴 코드를 찾는 방식으로 경전을 대한다. 그리고 이 전통은 기독교에도 이어져 ‘콰드리가(네 필의 말이 끄는 황제가 타는 마차)’ 방식의 성경읽기(△축자적 의미 △윤유적/알레고리적 의미 △도덕적 의미 △종말론적 의미)를 낳았다.

단테도 3가지 방식의 경전 읽기를 말한다. 첫째는 축자적 읽기이며, 둘째는 비유적 읽기, 마지막은 영적 읽기이다. 1세기의 신학자 클레멘트가 말한 ‘콰드리가’ 방식의 읽기에서 종말론적 의미와 도덕적 의미가 하나로 묶인 형태로 설명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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