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30 10:06 (금)
[칼럼]집중력 잃어가는 현대인, 대안은 입으로 읽는 ‘낭독’
[칼럼]집중력 잃어가는 현대인, 대안은 입으로 읽는 ‘낭독’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5.06.21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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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4>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사람들이 어떤 일이나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금붕어보다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캐나다에서 실시한 ‘주의지속시간’에 대한 소비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금붕어는 9초 동안 집중했고, 인간은 8초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10년전 12초에서 4초를 더 까먹어버려 금붕어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유는 ‘주의’를 끄는 대상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것. 시선을 빼앗는 텔레비전 정도는 박물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PC로 들어오는 메신저 메시지와 이메일들. 그리고 유혹의 한복판에 스마트화된 휴대폰이 자리한다.

‘카톡’거리거나 ‘부르르’ 몸을 떠는 휴대폰은 사회연결망의 허브가 되면서부터 인간을 노예처럼 복속시켰다. 잠자는 시간 빼고 휴대폰 없이 생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현대인이다. 이런 지경이니 8초의 ‘주의집중시간’도 놀라운 지경이다.

우리 국민들은 하루에 23.5분 정도 독서를 한다고 한다. 이 시간을 투자해서 연간 읽는 책은 약 9.2권 정도라고 하는데, 이마저도 2년전 조사 때보다 약 0.7권 정도 줄었다고 한다. 12초의 집중력이 8초로 줄어들었다는 통계와 같은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낭독의 전통
문자가 만들어지고 중세에 이르기까지 대략 4000년 동안 인간의 책읽기 습관은 낭독이었다.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진 쐐기문자는 점토판에 기록되었고 대부분 공문서이거나 상거래를 위한 문서였다고 한다. 이런 문서들은 문자를 아는 일부의 사람에 의해 대중에게 낭독되었다.

그리고 상당기간 동안 책보다는 기억력이 탁월한 음유시인들을 통해 문자를 모르는 군중들은 놀이를 체험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는 낭독, 낭송을 통해 전달된 최고 인기의 TV드라마였다.

그 이후 등장한 매체는 값비싼 양피지. 아직 인쇄술이 개발되지 않아 필경사들은 한 획 한 획 정성껏 필사해 성직자와 일부 귀족들만 볼 수 있었던 것이 책이었다. 당연히 책은 귀중하고 소중한 대상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독서는 성경을 성직자가 대중에게 읽고 설명하는 공동체의 독서였다.

따라서 소리를 내지 않는 묵독은 어색한 독서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성 암브로시우스의 묵독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던 것처럼 로마 병사들은 카이사르가 어머니 편지를 속으로 읽는 모습을 보고 낯설어 했다.

그랬던 독서가 묵독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시절. 수도원과 수도원 부설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생기면서부터 서서히 묵독이 도입되고 중국으로부터 종이와 인쇄술이 넘어온 뒤 개인들이 책을 갖게 되면서부터 묵독은 좀 더 일반화된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독서의 방법은 묵독으로 고착된다. 공동체의 독서가 개인의 독서로 형태 변환을 하게 된 것이다.

◆엄숙한 묵독의 시작
개인의 독서는 공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서관에서의 묵독도 늘었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책을 읽는 인구가 급증했다.

공직에서 쫓겨난 뒤 그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고전’을 찾았던 마키아벨리. 그는 피렌체 정청에서 근무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엄숙하게 서재에 들어가 하루 네 시간 독서를 했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은 ‘혼자서만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지혜의 음식’을 옛 성현들과 나누었다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백하고 있다. 즉 마키아벨리의 ‘왜’라는 질문은 초라한 시골집 서재에서의 묵독으로 일궈낸 것이었다.

미국의 문필가 랄프 왈도 에머슨도 조용한 곳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것을 최고로 여겼는데 학생 시절에는 차가운 방에서 턱까지 담요를 당겨 온기를 유지하면서 그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스러운 책일수록 밀실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읽어야 한다고 엄숙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시 낭독으로
이 같은 묵독의 전통이 8초의 주의집중시간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집중을 하지 못해 ‘난독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도구에게 시간을 투자할 수록 우리의 독서 시간도 함께 줄고 있다.

그러나 독서는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특히 인문학은 고전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지혜와 낯선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독서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은 책을 손에 잡지 못하는 사람들도 동의한다.

다시 낭독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바로 ‘집중력’의 개선이라는 긍정적 역할 때문이다. 낭독을 할 경우 뇌의 전두엽 부분이 활성화되어 정서적 반응이 보다 빠르다고 한다. 특히 낭독의 가장 큰 힘은 입으로 읽으면서 문자로 기록된 내용이 체화된다고 한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소리 내어 책을 읽었던 것처럼 몸으로 책을 읽으면 지식과 지혜가 몸에 기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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