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독서, 지도자의 독서<2>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권력을 향한 야심은 그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다.”

혁명의 열기가 뜨겁게 달궈지던 1919년 1월, 독일의 노 사상가 막스 베버가 뮌헨 지역의 대학생 대상의 강연에서 한 이야기다. 이 강연은 후에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일반적으로 동양사회에서는 권력욕을 드러내는 것을 군자답지 못한 자세라며 터부시해왔다. 권력은 하늘이 내린다는 전통적인 관념이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까닭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정치인들도 권력욕을 드러내기 보다는 겸양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신의 정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거침없이 권력의 본질을 들춰내면서 ‘권력에 대한 의지’를 정당화한다. 군주는 여우와 사자의 기질을 다 가져야 한다고 말한 마키아벨리가 ‘근대적 정치’를 《군주론》을 통해 설파했다면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근대적 권력의 성격과 정치인의 자세를 정의했다.

그런 영향인지 몰라도 더이상 겸양을 미덕이라고 여기지 않고 적절히 권력의지를 표현하는 정치인의 모습도 나오고 있다.

◆학습으로 권력의지 배운 성종
이 같은 측면에서 13세에 왕위에 올라, 7년간의 수렴청정을 거쳐 20세에 친정체제를 구축한 성종은 참된 의미에서 권력의지를 갖춘 제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태종이나 세조처럼 대군 시절부터 타고난 권력의지를 야심으로 키워가 권력을 쟁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갑작스런 예종의 죽음으로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조선의 국가 틀을 완성시킨 것을 보면 그에겐 태종과 세조와는 다른 성격의 권력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독서와 공부만으로 보내던 7년의 세월 동안 성종 스스로 만들어낸 ‘학습된 권력의지’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년들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가 보여주었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적 이익을 과감히 버리는 ‘학습된 용기’를 배웠듯이 성종은 7년의 기간 동안 ‘경연’을 통해 권력의지를 학습한 것이다.

우선 성종은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경연 횟수가 많은 왕이다. 25년의 재위 기간 중 총 9229회의 경연에 참석했다. 한해 평균 369회이다. 한마디로 공부에는 빠짐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그가 주로 읽고 공부한 책은 《논어》, 《맹자》, 《정관정요》, 《서경》, 《고려사》 등 경전과 제왕학에 관한 책들이다.

경연을 통해 소화한 책을 보면 그는 조용히 공부를 통해 권력을 이해하고, 그 권력을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그의 의지를 키워가면서 친정체제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한명회와 신숙주, 최항 등의 권신들이 지나친 경연 참석에 대해 제동을 걸어도 개의치 않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훈구 세력과 대척점에 있던 사림파와 접촉하고, 그들을 서서히 키워간다.

결정적 시기, 즉 친정체제로 들어간 20세가 되었을 때 노회한 한명회 등의 권신은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림파를 세력화시킨 성종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성종은 한명회 등을 원상(어린 왕을 정무적으로 보좌하는 임시직 재상)에서 해임시키고 훈구세력을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심에서 몰아낸다.

성종은 치열한 학습으로 권력을 일궈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홍문관의 설치 및 경국대전의 반포 등 조선의 기틀을 완성시키는 데 활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보를 보좌할 훈련된 인재를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공부하는 관료조직을 만들기 위해 세조 이후 중지했던 사가독서(賜暇讀書,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관료들에게 독서할 수 있는 휴가를 주는 제도)를 부활시켜 적극 추진한다.

◆정치의 완성 ‘기다림’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중 한 사람이 윈스턴 처칠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해 선거에서 그가 이끌던 보수당은 참패하고 처칠 또한 정치적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라고 짧은 축사를 한다.

참혹한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 영국의 경제가 정상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시절. 졸업생의 표정이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온 축하객의 얼굴이나 모두 불황의 그림자가 가득하던 시절, 그는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1951년 선거에서 다시 보수당을 이끌고 승리한다. 그리고 다시 수상에 취임한다. 그의 나이 77세 때의 일이다.

성종이 학습을 통해 ‘기다림’이 정치의 완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처칠은 본능적으로 ‘기다림’을 알았던 정치인이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준비, 그리고 기다림. 이 둘을 제대로 갖춰야 성공에 이른다. 그리고 준비와 기다림의 이면에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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