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서 경영인 변신, 궤도 자체가 명중하는 삶

▲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여름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경계를 넘나들며 새 영역을 개척하는 하이브리드”

의사이면서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경계를 넘나드는 의사들의 모임’을 만들어 활동 중인데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의대를 나와 의사도 못하는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하이브리드형 인재가 되자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는 이야기란다.

‘경계’는 변화무쌍하다. 때론 날카로워 설 자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또 어느 때는 까칠하기 그지없어 주변조차 접근하기 힘든 곳이 경계이다. 간혹 후덕하게 품을 열어 설자리는 물론 두 발 뻗고 누울 자리도 마련해주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발을 딛을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의 경계이며, 사람 간의 경계이다. 그리고 철학이나 역사의 경계이기도 하고 경영의 경계이기도 하다.

그런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선 경계를 넘어서는 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 다른 영역을 통섭해 가며 새로운 하이브리드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일까? 신창재 회장은 때론 처절하게, 또는 치열하게 현실과 대응한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처럼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메일을 주고받으며 소통에 나서고, 시인의 감성으로 무장하고 전 직원이 참여하는 행사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시를 낭송한다. 이밖에 선글라스를 쓰고 개그맨들과 함께 춤을 추거나 가면을 쓰고 자신의 메시지를 은유화하기도 한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면,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마샬 맥루한의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로 신 회장의 행보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바탕을 깔고 움직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치열함의 정점은 홀로 고독하게 경계에 설 때일 것이다. 최고경영자로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말이다. 위기에 처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전체 등기 임원의 사표를 받을 때, 주변에서 “의사 출신이 경영에 대해 뭘 안다고?”말할 때, 그는 홀로 경계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경계를 구분하고 하이브리드로 넘나들며 해법을 구했을 것이다.

‘회개하라=회복하라’
2010년 5월 포브스지는 신 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젊은 시절 한 번도 경영인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의사에서 경영자로의 흔치 않는 변신, 그리고 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등 충분한 스토리텔링이 그 기사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신 회장이 올 신년사에서 중석몰촉(中石沒鏃)을 말한다. 《사기》〈이장군전(李將軍專)〉에 등장하는 고사로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힌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도 성공할 수 있으니 교보도 그렇게 하자는 뜻을 담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석몰촉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상황이 조합된 것이다. 먼저 화살이 돌에 명중해야 한다. 그리고 살이 깊이 박혀야 한다. 명중도 어렵고 깊게 박히도록 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6년전 포브스 인터뷰의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이라는 구절과 ‘중석몰촉’이 묘한 대비감을 제공하고 있다.

명중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라’라고 한다. ‘야라’의 명사형은 ‘토라’다. 유대인들의 경전을 의미하며 흔히 모세5경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경전의 의미를 갖는 ‘토라’의 동사형인 ‘야라’는 왜 명중하다라는 뜻을 갖는가?

유대인들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인생을 제대로 산다는 것은 경전에서 가르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이 제시하는 방향에 명중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삶도 있다. 즉 대충 사는 삶, 그것을 ‘하타’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인간이 가야할 길을 모르고 헤맨다’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런 연유로 이 단어에는 ‘죄를 짓다’라는 뜻도 담겨 있다.

즉 ‘중석몰촉’은 히브리적 관점에서 과녁에 명중시키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쏜 화살이 과녁에 명중되기 위해선 그 화살의 궤적을 잘 읽어야 하고, 살을 쏘는 순간 살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했는데도 명중시키지 못했다면 명중하는 길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 되돌아오는 것이 바로 오늘날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에서 말하는 ‘회개’이다. 중세시대에는 잘못을 말하고 죄를 용서받는다는 고해성사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말이다.

산부의과 의사의 삶을 살면서 한 번도 경영을 꿈꾸지 않았던 신 회장이 경영 현장에 와서 보낸 지난 15년간의 삶이 바로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과녁에 명중하는 삶을 산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올 신년사에서 사용한 ‘중석몰촉’은 단연 돋보이는 단어이다.

가장 인문적인 금융회사 ‘교보’
국내 금융회사 중 인문적 전통이 가장 강하게 흐르는 회사를 고르라 하면 선뜻 누구나 ‘교보생명’을 선택할 것이다.

광화문 교보빌딩이 들어섰던 1980년,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인 교보문고를 만들었던 점과 그 빌딩 외벽에 철마다 손글씨로 광화문을 오가는 시민들의 인문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귀를 걸어두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인문적이기 때문이다.

금싸라기 같은 2700평 규모 공간에 서점이 들어서 있고, 그 공간의 서가 길이가 25킬로미터라고 한다. 보통의 경영자라면 서점은 언강생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은 선택은 아마도 신 회장의 선친 신용호 회장이 해방 직후 ‘여운형선생투쟁기’ 등의 책을 펴낸 민주문화사를 경영한 경험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가업의 출발이 출판문화에 있었기에 선친의 유업을 잇고자하는 신 회장의 문화적 마인드는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오늘도 광화문 네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시인 정희성 씨의 시 <숲>의 구절인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그대와 나는 왜/숲이 아닌가”를 보면서 걷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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