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땀으로 쟁취해야 할 ‘카이로스’ 순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서 배운 리더십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시간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흐르는 물 같은 ‘크로노스’와 결정적 시점과 기회의 의미를 담은 ‘카이로스’가 그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크로노스(Chronos)는 올림푸스의 주신인 제우스의 아버지 이름이다. 이 크로노스가 시간을 말할 때는 일상의 시간을 말한다. 카이로스(Kairos)도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제우스의 막내아들이며 기회의 신이라고 불린다. 그 카이로스가 시간을 의미할 때는 자신이 주도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시간이자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시점에서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운명을 가르는 순간을 의미한다.

톱니바퀴로 도는 오늘날의 시계를 발명한 인류는 ‘시간’이라는 개념과 함께 근대를 열었고, 근대화는 산업화로 연결되어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 이후 최고의 생산성을 기록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그러나 인류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관리를 하고 있지만 카이로스의 시간 앞에선 매번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크로노스의 시간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운명적인 시간을 놓치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을 자주 목격한다. MP3 플레이어 시장을 주도하던 아이리버와 코원 등의 국내 기업들은 아이팟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하고 눈앞의 성장에 만족하다 큰 실패를 경험해야 했고, 아이폰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시장 예측에 실패한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은 더 이상 유력 휴대폰메이커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도모하는 일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카이로스’의 시간을 읽어내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역사책을 읽고, 과거의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에 어떻게 움직이고 판단했는지를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보고 나름의 예측을 하기도 한다.

# 안민수 “단기 성과보단 미래가치를 키워야 한다”
삼성화재 안민수 사장도 카이로스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CEO이다. ‘비서실’ 근무라는 것이 이미 수없이 카이로스의 선택을 시뮬레이션 해야 하는 보직인데다, 삼성생명 근무시절부터 국제금융 추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해 빠짐없이 뉴스메일을 체크하던 일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는 눈앞의 성과보다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결정적 순간은 지금 현재 눈앞에 있을 수도 있지만 ‘준비하고’ ‘파악하고’ ‘관리된’ 결정적 순간만이 제대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임직원들에게 “미래가치를 키워야 한다”고 수시로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런 안 사장이 삼성그룹의 ‘삼성인 책 나눔 바자회’에 내놓은 책이 ‘기다림의 미학’을 완성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이다. 그는 “아내와 딸까지 죽이는 아픔을 견디며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다림의 철학에서 삶과 리더십의 본질을 배우게 된다”고 이 책의 추천의 변을 적고 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다림’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인물 순위에서 만년 3위를 기록하는 인물이다. 야마오카 소히치의 대하 역사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미 2000년대 중반 1억500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국내에 이 책이 소개되어 번역된 것도 근 40년에 이르고 있을 정도이니,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그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 사장이 그를 꼽는 이유는 ‘기다림의 철학’이다. 두견새의 울음에 대한 일본 전국시대 세 영웅들의 답변은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고사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으면 죽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울게 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춘추오패 중 한 사람이었던 초 장왕의 불비불명(不飛不鳴) 이야기나 한신의 수과지욕(受袴下辱)의 고사가 전하는 메시지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카이로스를 잡기 위한 ‘기다림’이다.

만약 초 장왕이 자신의 적과 아군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왕의 권위만을 믿고 왕권을 휘둘렀다면 그는 패권은커녕, 초나라의 권신들에게 능욕을 당했을 것이다. 한신 또한 불우했던 시절, 동네 불량배의 사타구니 사이를 기어가지 않고 자신의 자존감을 들춰냈다면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개국하는 대업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
이밖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이 전하는 메시지는 많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무인출신으로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도쿠가와 막부를 출범시켰지만 상공업에 힘써 위민(爲民), 즉 실리를 최우선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또한 제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정책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지 않아 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과거 정부가 만든 제도일지라도 변덕스럽게 바꾸지 않고 조금씩 현실화시켰다.

조직 관리의 측면에서도 그는 권력의 균형추를 유지시키기 위해 꽃과 열매를 동시에 주지 않았다. 즉 측근 다이묘들에겐 권력을 줄지라도 금전을 많이 주지 않았고, 자신을 도왔거나 중립을 지킨 다이묘에겐 금전을 많이 줄지라도 권력을 크게 나누진 않았다. 즉 꽃과 열매를 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적절히 조합시켜 조직을 최대한 안정화시키고자 하였다.

# 평사원 신화의 토대는 ‘기다림’과 ‘신한불란’
아마도 안민수 사장의 평사원 신화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기다림의 미학’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간혹 그가 인용하는 오기 아키라 감독(일본 오릭스)의 말 ‘신한불란(信汗不亂)’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흘린 땀을 믿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전에 준비하고 관리하면서 카이로스를 맞이하는 ‘이에야스’와 ‘신한불란’의 정신이 안 사장의 미덕을 담금질시켜 주었을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가 트위터에 올린 글 중에 다음의 글이 있다. “진정한 땀의 대가는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그래서 우리가 무엇이 되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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