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회의 끝에 76% 이상 찬성표 던져

구제금융 협상 물꼬 트였지만 국민 반발 거세

<대한금융신문=김민수 기자> 지난 16일 새벽(현지시간) 11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구제금융 협상개시 조건을 충족한 개혁법안이 그리스 의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도 다소 감소했다.

유럽안정기구(ESM)는 협상개시를 공식 확정하고 오는 22일까지 그리스에 2차 개혁법안 처리를 당부했다.

각 채권단의 입장이 다른 만큼 향후 채권단과 그리스의 구제금융 협상에서 부채경감을 위한 채무조정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의회 문턱 넘은 개혁법안…증시도 일제히 상승
그리스의 긴축방안을 담은 개혁법안이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얻으며 지난 16일 그리스 의회를 통과했다.

이날 전체 투표자 300명 중 찬성 229명, 반대 64명, 기권 6명, 불참 1명 등의 의견이 도출됐다.

통과된 긴축안에는 부가가치세(VAT) 인상, 연금 삭감, 통계청의 독립성 보장, 재정지출 자동 삭감 등의 유로존 정상회의가 요구한 내용이 담겼다.

긴축안 통과 후 유로그룹은 그리스에 70억유로의 브리지론을 제공키로 했다.

브리지론은 3개월 만기 단기자금으로 그리스가 20일 유럽중앙은행(ECB)의 채무 35억유로를 상환하는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

또 ECB는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대출한도를 기존 890억유로에서 9억유로 추가 증액한 899억유로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은행은 오는 20일부터 영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다만 1일 인출한도 60유로 제한 및 해외송금제한 등은 당분간 유지키로 했다.

긴축안 통과로 유럽과 뉴욕의 증시도 일제히 상승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지수는 전날보다 0.63% 오른 6796.45로 거래를 마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지수도 1.53% 상승한 1만1716.76에,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지수 역시 1.47% 뛴 5121.50에 각각 마감했다.

뉴욕 나스닥 지수는 1.26% 오른 5163.1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다우존스 지수는 전날 종가보다 0.39% 상승한 1만8120.25로 거래를 마감했다.

◆성난 민심 “우리는 배신당했다”
긴축안 통과로 급한 불은 껐지만 그리스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앞서 그리스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긴축반대를 의미하는 ‘아니오(OXI, 오히)’를 찍었다.

하지만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투표 전과 달리 긴축안을 통과시키면서 과거보다 더욱 혹독한 긴축의 길에 들어서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강도 높은 긴축안으로 국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면서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 산티그마 광장에서는 화염병과 돌을 난무하는 등 격렬한 폭력시위가 벌어졌다.

집권당인 시리자 내부에서도 반발이 존재한다.

이번 긴축안 표결에서 시리자 의원 149명 중 강경파인 ‘좌파연대’ 소속 의원들과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이 반대나 기권표를 던졌다.

성난 민심과 집권당의 반발로 인해 치프라스 총리의 실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불리는 치프라스 총리의 상황이 정말 위험해진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치프라스 총리가 개혁안 통과 후에 얼마나 오래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구제금융 협상, 채무경감이 쟁점
앞으로의 협상에서는 그리스 부채경감을 위한 채무조정이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유럽옌합(EU)는 만기연장, 국제통화기금(IMF)은 부채탕감 또는 30년 만기연장을 고려 중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그리스의 채무 재조정 원칙에 대한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그리스 채무는 이미 국내총생산의 180%에 달한다”며 “어떤 형태로든 채무경감이 필요하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주채권국인 독일은 그리스의 신뢰회복 없이 부채탕감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존은 필요하다면 그리스의 부채 탕감 대신 부채 경감에 관해 논의하고 추가적 조치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그리스의 새로운 개혁안을 온전히 이행할 수 있다는 신뢰가 제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제금융에 대한 합의는 긴축안을 통한 유로존 다른 나라들의 의회 승인 절차를 거쳐 완료됨에 따라 앞으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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