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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준비된 제왕 ‘정조’의 적극적 군주론
[칼럼]준비된 제왕 ‘정조’의 적극적 군주론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5.07.19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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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독서, 지도자의 독서<4>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정조만큼 준비된 제왕은 없다. 사도세자가 죽고 난 뒤 바로 왕세손(정조 나이 11세)이 되어 왕에 오르기까지(25세) 약 14년간 왕세손과 동궁의 자격으로 왕세자의 제왕학 학습 과정인 서연(書筵)을 참가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성왕인 세종과 성종도 서연 기간은 무척 짧았다. 세종은 셋째 아들로 짧은 세자 시절을 겪었고 성종은 너무 이른 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두 임금 모두 경연을 통해 제왕학을 공부해야 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정조는 임금에 오르기 전까지 웬만한 경전과 역사서를 통달하게 된다. 세손이 되기 훨씬 전인 정조 나이 4세 때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아홉 살이 되기 전까지 다섯 번 강독을 하였고, 다섯 살 때는 《동몽선습》, 아홉 살 때는 《대학》을 읽고 열한 살에 동궁이 되어서는 《효경》 《논어》 《소학》 《맹자》 《시경》 등을 읽는 등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쟁에 피해자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11세의 소년은 몸으로 정치적 처신 방법을 체득했고, 그 결과 14년간의 제왕 준비기간 동안 속내를 철저히 감추고 공부에 집중했다. 그 결과 왕위에 오른 스물다섯 나이에 조선 최고의 학자 수준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학자로서의 정조
요즘 학교에는 ‘왕따’에 이어 ‘책따’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책을 읽는 학생들이 왕따를 당한다는 것이다. 책을 안 읽는 사회 풍토가 학교에 그대로 투영된 현상인데, 이는 지금이나 정조 때나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정조가 남긴 시문집 《홍재전서》(184권 100책)를 보면 “요즈음에는 평소에 독서하는 사람이 드문데 그런 현상이 나는 너무도 이상하다. 하늘 아래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요즘에도 이처럼 말을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따가운 눈총을 받았을 텐데, 공부하는 그의 열정을 보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말이다.

그런 정조가 당대 최고의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 계단씩 오르며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라는 그의 공부관에 의해서다.

신하들과 《대학》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그는 “학문을 하는 것은 마치 일백층 높이의 보탑에 오르는 것과 같다. 한 층 한 층 따라 올라가면 남에게 묻지 않아도 저절로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세손 시절에는 그를 보좌하던 신하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연구하여 대상에 정신을 몰두하면 자연히 대상을 정확하게 꿰뚫어볼 때가 생기니 이것이 이른바 자득(스스로 터득)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적극적 군주론’으로 무장한 정조
숙종 이래 권력을 잃어도 사대부 사회의 주류였고, 영조의 즉위 과정에 깊숙이 개입되기도 하였으며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의 배후에 항시 존재했던 세력, 노론. 그들은 조선의 임금들에게 《서경》에 등장하는 요순시대를 본받을 것을 줄곧 요청해왔다.

이유는 임금은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일 없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은 정부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해야 태평성대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조선의 임금에게 요순(堯舜)처럼 ‘성왕이 되어주십시오’라고 주청하였다. 이 말의 이면에 담긴 뜻은 정치는 신하에게 맡기고 왕은 유학공부에나 전념하라는 뜻이었다.

그런 까닭에 왕의 제왕학 공부 시간이었던 경연(經筵)에서 유학의 경전이 빠짐없이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정조는 《서경》에서 군주가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했던 대목에 관심을 집중한다. 정조가 《서경》 《주역》 《시경》 《춘추》 《예기》 등을 읽고 중요한 부분 99편을 정리하여 쓴 《오경백편》에 담긴 《서경》의 주요 대목은 소통에 힘쓰고 정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임금에 관한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다.

정조의 이런 생각은 그가 총애했던 정약용이 귀양시절에 쓴 《경세유표》에 잘 담겨있다.

“천하에 요순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없었건만 하는 일이 없었다고 속이고, 천하에 요순보다 정밀한 사람이 없었건만 엉성하고 오활하다고 속인다. 그리하여 임금이 매양 일을 하고자 하면 반드시 요순을 생각하게 하여 스스로 단념하도록 하니, 이런 이유로 천하가 날로 부패해져서 능히 새로워지지 못하는 것이다.”

노론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이 글은 정조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적극적인 군주론’을 채택하고 통치에 임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서경》은 《정조실록》에 90차례 이상 인용되었으며 과거시험에도 줄곧 출제되었다.

이 같은 정치적 돌파력은 정조가 당대 최고의 이론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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