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정부가 지난 6일 2015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며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ndividual Savings Account, 이하 ISA) 도입을 확정했다.

ISA 제도는 정부가 저금리 고령화 시대에 적절한 투자수단 부재로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재산형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시기가 도래하며 신속한 노후대비 자금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본지는 내년 초로 예정된 ISA 본격 도입에 앞서 사용자 입장에서 본 ISA의 개념과 세제혜택, 해외 주요국의 사례, 국내의 효율적인 ISA도입방안 등을 심도 있게 분석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제대로 연금 받는 국민 과반수도 안돼
국내에 도입되는 비과세 저축계좌(ISA)의 역할을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나라 가계자산 구성의 문제점과 이것이 우리의 노후에 어떤 타격을 주게 될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가계자산 구성의 가장 큰 특징은 비유동성 자산의 압도적인 비중이다. 부동산 보유액, 전월세 보증금 등 주거와 관련된 자산액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가계보유 자산 중 금융자산만 따로 분리해 보면 비유동성 자산인 예적금의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저축성보험과 연금성보험이 예적금과 유사한 안전자산이라는 측면에서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의 80% 이상이 비유동성 자산인 안전자산에 몰려있는 셈이다.

유동성 자산 부족은 특히 중저소득층의 생애 설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소득이 높은 계층은 유동성 자산의 비중이 낮아도 절대금액 측면에서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지만 중위소득 이하 가구의 유동성 자산은 그 보유비중뿐만 아니라 절대금액 면에서도 매우 부족하다. 이들이 직업을 잃거나 의료비가 긴급하게 필요할 경우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가계 금융자산의 안전자산 집중은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비효율을 초래한다.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혁신기업의 자금공급은 자본시장이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

혁신기업의 이면에는 높은 위험성이 내재돼 있는데 그 위험의 모니터링과 분산 측면에서 자본시장이 은행에 비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계 금융자산이 안전자산에만 집중되면 자본시장은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워진다. 노후준비 측면의 문제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인구고령화 진전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국민들의 퇴직자산을 다층구조로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퇴직자산 체계는 국민연금, 퇴직연금(퇴직금), 개인연금 등이 그 중심을 형성한다. 국내 퇴직자산 체계는 외견상 이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막상 연금수급시기가 도래하면 잠재돼 있던 문제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연금수혜 대상에서 빠지는 국민이 과반수를 넘는다.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2012년 기준 18∼59세 총인구 중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를 받지 못하는 국민이 52.1%에 달했으며 국민연금적용 대상자 중에서도 수급권이 없는 납부예외자와 장기체납자도 2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역시 지난해 9월 말 기준 전체 상용근로자수 대비 퇴직연금 가입률이 51% 수준에 불과하며 개인연금은 세제혜택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가입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가입률이 15.7%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을 받는다고 해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짧은 근로기간을 고려해 보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60∼70% 수준까지 이르는 국민들은 상당히 적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45% 수준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평균소득의 가입자가 40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했을 때나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서민에게 외면받는 비과세 금융상품의 모순
기존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금융상품들도 중저소득층의 안전한 노후를 보장하는 생애설계로는 큰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세제혜택 상품들의 설계 목적은 중저소득층 이하 계층의 저축을 증진시키기 위해 세제혜택이라는 인센티브를 주되 오랜 기간 저축을 유지시키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대부분의 금융상품들이 가입자격과 의무보유 기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소득이 낮은 계층들은 금융상품의 유동성 제약이 결정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또 투자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형 금융상품의 경우 의무보유 기간 설정이 유동성 제약뿐만 아니라 위험대비 측면에서도 가입자들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세제혜택 금융상품들은 연금상품을 제외하면 가입기한에 제한을 두는 소위 ‘일몰형’ 상품들로 가입자들이 충분한 재무설계 없이 서둘러 상품에 가입하고 혜택이 종료되는 시점에 상품을 해지해버리기 때문에 생애 기간 전체를 고려한 저축 설계가 어렵다.

이렇게 기존 금융회사들이 제공하는 세제혜택 금융상품으로는 가입자들이 자신들의 생애 전주기에 맞춰 저축과 투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이다.

가입자들은 세제혜택 상품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고려하기 보다는 세제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나 금융기관도 새로운 세제혜택 상품을 출시하면 세제혜택을 준다는 점만 강조할 뿐이다. 그 결과 중복가입에 대한 제한이 없으면 개인들이 유사한 세제혜택 상품에 중복 가입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생애 전 주기 자산설계 위해 ISA로 저축·투자 일원화
인구고령화로 퇴직 이후 긴 삶을 보내야 하는 우리나라 중저소득층에게 생애 전 주기에 걸친 저축 및 투자계획 수립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생애 전주기를 고려한 저축과 투자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재 연령과 예상 퇴직시기, 급여수준 및 급여의 변화패턴, 소비지출의 구조, 위험성향, 보유자산의 규모와 유형 등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세제혜택 금융상품에 연속성이 있어야 하며 선택할 수 있는 자산의 종류가 다양하고 상품교체의 탄력성을 보유해야 한다.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 구성은 안전자산에 치중돼 있고 기존 세제혜택 금융상품도 긴 의무보유기간과 상품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잠재가입자들은 세제혜택에도 불구하고 투자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주식이나 펀드 등을 외면해왔다.

금융위에서 최근 도입을 결정한 비과세 저축계좌(ISA)는 이 같은 기존 세제혜택 금융상품들의 단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비과세 저축계좌 도입은 가입자의 금융자산 대부분이 한 계좌에 편입돼 가입자들이 하나의 체계 내에서 금융자산을 쉽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이는 생애주기 저축 및 투자 플랜을 세우는데 아주 강력한 장점”이라며 “여기에 투자자문 서비스까지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생애주기 자산관리의 이상적인 형태에 보다 가까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에 도입되는 비과세 저축계좌는 자산군 간 또는 상품 간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 투자형 자산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잠재가입자들의 심리적 저항이 약하고 그 결과 금융자산 구성의 다양성을 기대할 수 있다. 더불어 전문적인 자문서비스까지 더해진다면 정보제공의 효율화를 통해 투자형 자산에 대한 가입자들의 거부감을 더욱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비과세 저축계좌로 세제혜택 금융상품을 일원화하면 가입자가 원하는 기존 금융상품들을 하나의 종합계좌에 담으면 돼 소비자뿐만 아니라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편의성과 효율성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며 “가입자는 한눈에 금융상품 설계가 가능하고 정부도 가입자의 구성, 필요한 재원규모 등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어 향후 정부가 세제혜택 금융상품에 대해 평가하고 제도의 개선방향을 제시하는데 용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료제공: 자본시장연구원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