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아는 사람이 전략 세운다’ 함영주 내정자 선택

‘서열·출신·관행’ 허물고, KEB하나은행 입장에서 결정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외환은행 노조와의 전격적인 협상을 통해 내달 KEB하나은행이 출범키로 결정을 내렸을 때까지도 새로운 은행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수장을 맡던 이들의 몫으로 예상되었다.

특히 외환은행을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김한조 은행장의 가능성을 더 높이 보았다. 그런데 김정태 회장은 통합은행장 논의 초창기까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신의 한 수’를 두었다.

상고 출신에 피합병은행인 서울은행으로 입행해 뱅커의 길을 걸은 함영주 부행장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절차는 행추위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김정태 회장은 행추위 위원들이 추천한 본인의 행장 겸임을 끝내 거부하고, 함 부행장을 선택하도록 한 것은 김 회장의 뚝심이었고, 마음 속 결단이었다.

# 영업을 아는 사람이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김 회장은 ‘영업을 아는 사람이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함영주 내정자 자신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등용 배경을 설명하면서 ‘통합은행의 목표가 영업력 강화이므로 영업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뛴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라고 답한 바 있다.

김 회장의 영업을 아는 사람이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은 전쟁을 아는 사람이 전략을 세운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현재까지도 읽히고 있는 유명한 전략서는 모두 전쟁을 아는 군인 출신들의 책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손자의 《손자병법》, 오기의 《오자병법》 등 모두 예외 없이 무인 출신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서를 쓴 것이다.

전쟁을 잘 알았던 나폴레옹은 비록 병법서를 쓰진 않았지만 전쟁 관련 금언을 수 없이 남겼다. 그리고 그의 밑에서 참모를 했던 앙투앙 앙리 조미니가 쓴 《전쟁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조미니의 《전쟁술》은 모두 나폴레옹에 의해 자극을 받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입장에서 쓴 책이다. 그만큼 전쟁과 관련한 나폴레옹은 탁월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에게도 전쟁을 모르는 장수가 한 명 있었다. 워털루 전쟁을 패배하게 만든 장군 그루쉬가 바로 그다.

독일 문학계의 거장이자 히틀러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했던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짧은 워털루 전쟁 이야기에서 나폴레옹에게 패배를 안긴 그루쉬는 “중간 정도의 능력에 선량하고 정직하고 용감하고 신뢰할 만한 기병대장이지만 단지 기병대장일 뿐 그 이상은 못되는 작자”였다.

나폴레옹은 영국의 웰링턴과 프로이센군이 다시 만나지 못하도록 그들을 추격하라고 그루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그루쉬는 그의 고지식함으로 인해 며칠간 안개 속을 헤매며 나폴레옹의 임무를 완수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루쉬는 전쟁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바뀐 환경에 맞는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나폴레옹 군대에게 패배를 안기고 만다.

# 신의 한 수의 배경
김정태 회장의 선택이 빛나는 것은 예상을 깼다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답안을 찾기 위해 그동안의 관행을 무너뜨렸다는데 있다.

그동안 하나은행의 은행장 인사는 학력과 출신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상고를 졸업한데다 피인수은행 출신인 함영주 내정자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은행이 더 큰 은행으로 성장하기 위해 그동안 유지하던 ‘성골’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 알을 깼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서열과 출신,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태어나, 규모에 맞게 큰 은행이 되어야 할 KEB하나은행의 입장에서 모든 판단을 내렸다는 것. 현재의 입장에서 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낸 것. 이것이 바로 ‘신의 한 수’를 낳은 배경이다.

그 결과 연일 기사로 보도되듯이, 본인만 노력하면 학력이나 출신과 관계없이 은행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KEB하나은행 구성원 모두에게 던져 주었다.

이와 함께 통합은행이 이질적 조직의 화학적 결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자체를 일거에 해소시킨 결정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결정구는 ‘인사의 힘’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 마음의 주인을 세우고 백락의 눈으로 보다
자신의 왕세자 책봉을 끝까지 반대했던 정적 황희를 영의정에 앉힌 조선의 성군 세종이 집권 기간 중 손에서 내려놓지 않은 책이 한 권 있었다. 송나라의 진덕수가 제왕학의 교과서로 쓴 책 《대학연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 놓쳐서는 안 되는 ‘인사’와 관련한 명문장이 하나있다.

“모름지기 정사가 제대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엉망이 되는가는 사람을 쓰는데 성공했는가 아니면 실패했는가에 달려 있으니 임금이 된 자로서 누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마는 사람을 쓰고 버리는 사이에 있어서 원래 주려던 자리가 바뀌지 않는 일은 지극히 드뭅니다. 그만큼 마음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어 옳고 그름, 그릇되고 바름 등이 뭔가에 순간적인 홀림의 여부로 인해 정해집니다. 문왕은 능히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켰기 때문에 이 예사로운 일과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을 담당할 사람을 제대로 세웠으니 모두 다 현명하고 그에 맞는 뛰어난 덕을 갖춘 자들이었습니다.”

‘신의 한 수’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백락’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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