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8 12:20 (수)
[칼럼]“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칼럼]“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5.09.06 13: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문학에서 만난 ‘두려움’<2>

 
공포의 실체 파악하면 해결책은 뒤 따르는 것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지난 달 말 세계적인 뇌과학자이자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였던 올리버 색스가 향년 82세로 타개했다. 그의 죽음은 인문정신에 투철했던 한 과학자의 죽음, 그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남겼다.

그가 올 2월 〈뉴욕타임즈〉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암투병 중임을 밝혔을 때,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파했고 고마워했다. 그에게 죽음이 임박해 왔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죽음에 초연해 하려는 그의 노력에 대한 아픔과 고마움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고마움입니다” 그의 기고문에 실린 솔직한 이 표현은 과학자의 이성이라기보다 작가의 감성이었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나는 지각하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서 한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특혜이자 모험이었다고 느낍니다”

지각하고 생각하는 동물이어서, 그리고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많은 이들과 의사와 환자로서, 때로는 작가와 독자로서 관계를 맺고 살 수 있었다는 점이 특혜이자 모험이었다고 고마워하는 올리버 색스 교수.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은 죽음의 두려움도 이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이었다.

그런데 이성의 놀라운 능력을 보유한 인간들이 항시 이렇게 자신의 존엄함을 유지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철학자 피론은 어느 날 배를 타고 가다가 대단한 위험에 빠졌는데, 그 때 자기 주위의 공포에 싸인 자들에게로 예로서 거기 있던 돼지 한 마리를 보여주었다. 그 돼지는 그 폭풍우에도 아무 걱정이 없었다” 《수상록》(동서문화사판)

몽테뉴는 피론의 예를 들어 인간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이성이 오히려 평정을 잃게 하고, 우리의 지식이 피론의 돼지 보다 못하게 함을 비판한다. 특히 이성과 지각이 만들어내는 불필요한 두려움을 경계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두려움의 실체를 볼 수 있다면?
올리버 색스는 그런 점에서 몽테뉴의 비판을 경계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 같다. 그는 그에게 다가온 두려움의 본질을 보았을 것이다.

2011년 개봉했던 김한민 감독의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역적으로 몰린 주인공(남이, 박해일 분)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을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두려움의 본질을 확인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이 말은 2003년 개봉했던 에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눈 감지 말고 똑바로 봐. 두려움의 실체는 생각과 다를 수 있어”라는 대사와 맥을 같이한다.

지난해 개봉해서 1760만이라는 최다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괴멸 직전의 조선 수군에 퍼져 있는 ‘두려움’을 이겨낼 방법에 고심하는 대목이 나온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한 척 남아 있던 거북선마저 불 타버린 조선 수군은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과 상대해야 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형(形)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사기마저 땅에 떨어져 세(勢)도 딸리는 형국에서 이순신(최민식 분)은 이렇게 말한다.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지.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이순신은 두려움이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전파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죽음을 불사한 결사항전. 이순신은 객관적으로 밀리는 형(形)을 극복할 방법은 없지만, 세(勢)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작가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학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 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 댈 수 없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같은 말이었을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학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는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역설적이지만 이순신은 이렇게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고 고백하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나서야 했다. 그리고 일궈낸 승리가 ‘명량해전’이었다.

1994년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장기수 레드(모건 프리먼 분)는 “두려움은 인간을 감금하고, 희망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앞뒀던 올리버 색스 교수나 최악의 군사적 상황에 몰려있던 이순신 장군 모두 생물학적 한계를 인정하면서 두려움을 떨쳐냈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