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8 13:00 (수)
[칼럼]20세기, 역사 이래 ‘두려움’의 시대
[칼럼]20세기, 역사 이래 ‘두려움’의 시대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5.09.13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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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서 만난 ‘두려움’<3>

희망과 공포는 모두 불안정한 감정
두려움의 실체 파악할 마음이 관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17세기는 수학의 시대, 18세기는 자연과학의 시대, 19세기는 생물학의 시대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는 두려움의 시대다.”

알베르 카뮈가 레지스탕스 활동 중에도 멈추지 않고 썼던 글(잡지 《전투》에 기고한 원고)의 한 대목이다. 전체주의와의 전쟁이 극한의 공포를 만들어내던 시절, 그는 생생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두려움의 시대’를 고발한다.

그리고 그는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 《계엄령》 등의 소설과 희곡을 통해 20세기의 인류가 자행한 행위에 대해 느꼈던 공포를 가감 없이 직필한다.

20세기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꼈던 이는 카뮈만이 아니다. 20세기를 살았던 대부분의 문학가와 예술가, 그리고 역사가들은 20세기를 정의하면서 꼭 ‘두려움’ 내지는 공포가 연상되는 단어를 삽입시켰다.

에릭 홉스봄(역사학자)이 20세기의 역사를 쓴 책, 《극단의 시대》는 12명의 세계적인 명사들이 20세기를 어떻게 정의하는 지로 시작한다. 철학자 이사야 벌린에게는 ‘가장 끔찍한 세기’였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윌리엄 골딩에게는 ‘가장 폭력적인 세기’로 기억되었고, 영국의 음악가 예후디 메뉴인은 ‘모든 환상과 이상을 파괴해 버린’ 세기로 인식되었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20세기를 정리한 자신의 책 《증오의 세기》에서 “1900년 이후 100년은 현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세기였고, (…)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전쟁과 학살, 그리고 공황은 이렇게 인류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제공한 것이다.

◆희망의 세기가 두려움의 세기로
카뮈의 정의를 다르게 표현하면 ‘18세기를 계몽주의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디플레이션의 시대였다. 그리고 20세기는 희망으로 시작해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대’로 마감했다.

가장 계몽된 인류가 유럽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왔던 시기가 18세기였다면, 19세기는 철도, 운하의 개설과 내연기관의 획기적 발전으로 운송비용이 파격적으로 저렴해지면서 가격 인하의 시대를 살게 된다.(20세기 대공황을 경험하기 전까지 디플레이션은 공포의 대상까지는 아니었다.)

이 같은 세계사적 흐름은 20세기에 대해 매우 희망찬 전망을 내놓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전망과 다른 20세기의 모습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었다.

마이클 하워드는 편저로 낸 《20세기의 역사》의 머리말에서 “20세기는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한 역설로 그 막을 열었다”고 말한다.

20세기의 희망은 전기와 내연기관, 항공술 그리고 의학의 발달 등 과학적 발견과 기술의 발전이 유사 이래 존재하던 빈곤과 질병, 기아, 전쟁으로부터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은 가장 강한 자들과 가장 무자비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미래의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오는 공포였다.

그리고 하워드 교수는 이 같은 희망과 공포를 21세기에도 인류가 직면할 것이라고 말한다. 20세기와의 차이는 “100년 전에는 그러한 희망과 두려움이 대체로 서방 산업사회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란다.

◆두려움과 희망이라는 감정
스피노자는 그의 책 《에티카》에서 희망과 두려움 모두 불안전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먼저 두려움은 “의심스러운 사물의 이미지로부터 생기는 안정적이지 못한 슬픔”이라고 말하고 있고 희망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해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 사물의 이미지로부터 생기는 안정적이지 못한 기쁨”이라고 적고 있다.

즉 공포나 희망은 모두 확실하고 견고한 감정들이 아니어서 언제든 다른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변할 수 있는 감정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일방적으로 이 감정들이 제공하는 느낌을 신뢰한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한 “공포 없는 희망도 없고 희망 없는 공포도 없다”는 말도 잊고 산다.

희망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모두 하나의 생각 속에서 존재하는데,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희망과 두려움은 금융시장에서 자주 인용하는 ‘탐욕’과 ‘두려움’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두 감정 모두 출발은 마음에 있다. 희망 내지 탐욕에 대한 감정도 마음에서 정리해야 하고 두려움도 그 실체를 확인할 때까지 마음에서 다잡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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