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 연상케 하는 혁신 리더십

▲ 메리츠화재 김용범 사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평범한 사람은 세상의 풍속과 어울리지만, 현명한 사람은 변혁과 함께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조세가(趙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역사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혁’을 일궈낸 무령왕이 한 이야기다.

〈조세가(趙世家)〉는 전국시대 칠웅 중 진나라와 마지막까지 패권을 다퉜던 조나라 왕들의 역사다.
조나라가 진나라와 마지막까지 겨룰 수 있었던 것은 무령왕이라는 걸출한 왕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중산국 등을 병합하는 등 북방 개척을 일궜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춘추시대까지 일상적이었던 ‘전차전’과 ‘보병전’의 틀을 깨고 새로운 군사작전을 기획하여 성공을 거둔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자성어가 ‘호복기사(胡服騎射)’다. 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을 타면서 화살을 쏜다는 뜻의 이 단어는 실용을 추구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근원적인 문제를 개혁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무령왕의 변화에 대한 인식은 북방 민족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생기게 된다. 그들의 기마병 운용은 자신들의 전차병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나라의 복식은 기마 전력을 구사하는데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과감하게 북방민족의 복식(胡服)을 채택하게 된다.

그는 즉시 자신부터 호인들의 복장을 입고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와 장화를 신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을 지키려는 귀족계층과 갈등을 벌였지만, 그는 수레를 타는 귀족들의 수레를 부수고 말을 타게 하였고, 사냥을 통해 말에서 화살을 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했다. 즉 변화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강한 국방력을 만들어주었다.

이 과정을 사마천은 “책 속의 지식으로 말을 모는 자는 말의 속성을 다 이해할 수 없고, 옛날 법도만으로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는 자는 사리의 변화에 통달할 수 없다(이서어자부진마지정 以書御者不盡馬之情 이고제제금자부달사지변 以古帝制今者不達事之變)”고 《사기》에 적고 있다.

#아메바경영으로 메리츠화재 활로 모색
“유연한 사고를 하려면 복장이 자유로워야 하거든요.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긴장을 털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연말 메리츠화재의 사장에 취임한 김용범 사장이 ‘변화와 혁신’ 프로젝트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자율복장제 도입의 취지다.

자율복장 뿐이 아니다. 그는 사장에 취임한 이후 신년사를 통해 대면보고를 없애고 문서의 80%를 줄이되 꼭 필요한 경우 한 페이지를 넘지 못하도록 하였고, 회의 시간도 30분을 넘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조직의 벽이 생산성 증가를 방해한다는 생각에 ‘벽 없는 조직’을 강조하고 나섰다.

보수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금융권의 입장에서 김 사장의 행보는 파격적이다. 김 사장의 선택 중 한 두 가지를 선택한 기업들은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타 부서 사람들과 식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직원들의 야근실적을 부서장의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수동적인 샐러리맨을 능동적인 사업가로 변신시키기 위해 아메바경영은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 속에서 변화의 목적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김 사장 취임 이후 실적(매출 9%, 순이익 37% 증가)은 뚜렷하게 개선되었지만, 업계 5위의 자리에서 확장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변화만이 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변화를 위해 선택한 답들이 매번 맞지는 않지만, 과거의 선택을 유지하는 것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 그는 ‘아메바경영’을 실제 체험하기 위해 일본 출장길에 나선다고 한다.

#행동이 변해야 문화가 바뀐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와튼스쿨 교수이자 변화관리의 대가인 그레고리 셰어(《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변화 관리의 기술》의 저자)는 리더들이 신념과 가치를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문화가 만들어져 행동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는 행동이 신념과 가치를 변화시키고 문화를 바꾼다고 말한다.

김 사장은 이 대목을 그의 신년사에 반영한다. 의사결정구조와 소통에 대한 낭비를 없애면 업무시간의 집중도를 높여 효율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대목에 앞서 그는 “행동이 가치와 신념을 변화시키고 문화를 바꾼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비단 조직의 업무 효율성에 머물지 않고 있다. 그가 원조 아메바경영 견학을 통해 얻고 싶은 가치는 ‘신명나게 일하고 정확한 보상을 받는 체계’이다. JAL에서 1년 만에 성과를 거둔 ‘아메바경영’의 김용범 사장 버전을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의 생각은 다음의 그의 말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기존 시스템이 시험을 보고 한 달 뒤에 반 평균 성적표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면 아메바경영은 시험을 보자마자 자신의 성적표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거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공격적인 변화를 그는 멈추지 않고 말을 달리면서 일궈내고자 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기 않기 위해 6시 이전에 회사를 나오고, 노타이에 청바지를 입은 김 사장을 볼 수 있는 이유이다.

변화만이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노력이라는 것을 그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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