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두려움’<4>

 
공포는 객관화시켜야 마음에서 사라질 대상
맥아더, 두려움 이기는 것은 자신감이라 강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자네의 두려움이 자네로 하여금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는 걸세. 두려움이 미치는 영향 중에는 모든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있다네.”

우리에게 햄릿의 반대적 인간형으로 각인되어 있는 돈키호테가 그를 따르는 산초에게 건넨 말이다. 산초의 눈에는 양떼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데도 기사가 되어 말에 오른 돈키호테는 그 양떼를 적군이라며 돌격한다. 그러면서 산초에게 던진 말이다.

16세기 종교재판의 광기가 휘몰아치던 스페인. 외적으로는 무적함대를 이끌고 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을 넘보던 스페인. 그러나 내적으로는 종교적 광기에 갇혀 불관용이 만연해 있던 사회. 전쟁 참전용사였지만 개종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각종 차별을 받아야 했던 세르반테스는 그런 사회를 고발하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 돈키호테를 창조한다.

돈키호테를 통해 세르반테스는 귀족과 성직자를 은유적으로 조롱한다. 위 장면에서도 돈키호테는 두려움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양떼를 향해 돌격하는 모습이 괴상하게 보이지만, 이마저도 지배계층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돈키호테의 말처럼 두려움은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여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당시 스페인의 귀족들이 정치적, 종교적 권위로부터 느꼈던 두려움이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파울로 코엘료는 “두려움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두려움 때문에 무력해지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을 무력하게 하는 두려움을 따르다가 길을 잃고 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마음에서 일고 있는 감각에 휘둘려 길을 잃고 마는 우리네 인생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SF작가 프랭크 허버트는 코엘료보다 본질에 더 다가서고 있다. 그의 대표작 《듄》에 아래와 같은 두려움에 대한 구절이 등장한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하여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마음에서 이는 감각의 움직임은 스피노자의 ‘두려움’의 정의처럼 불완전한 감정이기 때문에 다른 형태로 변화하거나 소멸된다. 그래서 허버트는 본질인 나를 지키고 있으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같은 두려움의 성질과 군중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 승리를 일궈낸 정치인이 여럿 있는데, 그 중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두려움의 본질을 강조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그는 취임 연설(1933년)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뿐입니다. 즉 후퇴를 전진으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노력을 마비시키는, 이름 없고, 비이성적이며, 부당한 공포가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두려움을 객관화시켜서 극복해내자는 취지에서 ‘두려움 그 자체’를 이야기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객관화는 그가 처음 한 것은 아니다.

몽테뉴가 그의 《수상록》(1580년)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고 말한 바 있고, 프란시스 베이컨은 《학문의 진보》(1623년)에서 “두려움 그 자체 외에 두려운 것은 없다”고 적고 있다.

이후에도 영국의 초대 웰링턴 공작이었던 아서 웨즐리가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이라고 말했고 《웰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두려움만큼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글을 쓴 바 있다.

그리고 더글라스 맥아더는 웨스트포인트에서의 고별 연설(1962년)에서 젊음과 늙음으로 두려움을 대비시키는 명연설을 한다.

“여러분은 믿는 만큼 젊어지고 의심하는 만큼 늙습니다. 또한 자신감만큼 젊어지고 두려움만큼 늙습니다.”

믿음은 자신감의 바탕이 되며, 의심은 두려움의 근원이라는 군인 맥아더의 혜안은 무수한 전장터에서 겪은 그의 체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결국 자신감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