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생각’ <1>

 
언어 사용한 인류, 생각하게 돼 지구 정복
IT기술에 기억 위탁하면서 생각능력도 상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류가 5000여 년 전에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기억을 외부 매체(점토판, 양피지, 종이 등)에 의존하기 시작했다면, 5만 년 전쯤 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생각’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리처드 클라인 등의 과학자들은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5만 년 전쯤이라고 말한다.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는 마음이 생각을 갖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 경험은 인류를 지구의 유일한 정복자가 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마음 설계의 역사에서 언어의 발명만큼 중요하고 높이 상승한 단계는 없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 발명의 수혜자가 되자, 지상의 다른 모든 종 너머로 저 멀리 쏘아 보낼 새 총에 올라섰다”고 말한다.

다시 정리해 말하면, 언어가 만들어지면서 마음에 생겨나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생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은 인간 종간의 협력을 만들어냈고, 도구의 혁신으로 이어져 자연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과 그 부산물인 도구와 협력은 문명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와이어드》의 창립자인 케빈 켈리는 말한다.

◆생각은 떼 지어 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생각은 따로 떨어져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켈리는 말한다. 그의 책 《기술의 충격》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생각은 결코 홀로 서지 않는다. 생각은 부수적인 생각, 결과로 생기는 개념, 뒷받침하는 개념, 기초적인 가정, 부수적 효과, 논리적 결과, 이어서 나타나는 연쇄적인 가능성으로 엮인 그물을 짠다. 생각은 떼 지어 난다. 한 생각을 지닌다는 것은 생각들의 구름을 지닌다는 의미다.”

하나의 생각은 꼬리를 물면서 다른 생각을 부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생각의 클라우드’에서 효율적인 것들을 조합하는 시도가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언어는 생각의 연결고리가 되었고 그 고리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기술적 진화를 도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켈리의 주장은 떼 지어 등장하는 생각, 그것이 ‘생각의 클라우드’이며,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조합된 생각들은 융합된 새로운 생각, 즉 아이디어가 되었고 그것이 기술 발명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서로 무관한 부분들이 더 진화되어진 설계 속에서 치밀하게 통합된 시스템을 이루면서 말이다.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
그런데 우리는 지구의 유일한 정복자가 되도록 만들어 준 그 생각의 힘을 자발적으로 잃어버리고 있다.

뇌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뇌가 가진 다양한 능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재발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능력을 이어가기 보다는 편안함을 만끽하기 위해 다양한 전자제품에 우리의 생각하는 능력을 위탁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그리고 내비게이션 등에 전화번호와 각종 중요한 메모, 그리고 길을 찾는 능력을 의존한다. 단순히 생각을 위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는 능력까지 맡기고 있다.

하지만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20세기 초입에 이르기까지 전승되어지는 문화를 살펴보면, 인류가 ‘기억’을 위해 ‘생각하는 능력’을 매우 잘 가꾸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800년 전에 쓰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1만 행이 넘는 방대한 규모임에도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온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우리의 판소리 〈흥부가〉만 하더라도 A4 종이 50장 분량에 완창에만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런 가사를 외워서 노래하듯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도 구전되다 뒤에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글로 정리된 것이다.

그런 ‘기억’하는 능력과 ‘생각’하는 능력을 우리는 IT기술에 떠맡긴 것이다.

여기서 전 예일대 영문과 교수였던 윌리엄 데레시에비츠의 생각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생각은 깨우침이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날 정도로 아주 오랜 시간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이 같은 ‘생각’의 정의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IT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는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링 등을 통해 인간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디어가 인간을 변모시키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뇌를 상실하기까지 한다고 무서운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인간에 대한 성찰 절실한 때
이미 생각을 외부 매체에 위탁하고 살아온 지 20~30년 쯤 된 오늘날, 우리에게 ‘생각’은 어떤 것인가.

앞으로 다가올 10년의 기간에는 옷에 컴퓨터가 들어가 있거나 안경에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인공지능’ 컴퓨터까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우리는 ‘생각’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생각을 잊어버린 인류가 현재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인간과 인간 고유의 능력인 ‘생각’의 관계에 대해 깊은 성찰이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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