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생각’ <3>

 
집중은 ‘과정’에, 집착은 ‘결과’에 애착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간은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독보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만 놀랍게도 결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저자 더글라스 애덤스의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아놀드 토인비의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데 있다”는 말과 유사하다.

인간의 반복되는 실수에 대한 지적은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문제는 왜 실수가 반복되는가이다. 이에 대해 존스홉킨스 대학의 P.M. 포르니 교수는 “타인의 실수를 통해 배우려면 자신의 실수를 통해 배울 때보다 집중력이 훨씬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실수는 그 실수의 결과를 온전히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그만큼의 영향을 주지만, 타인의 실수는 자신에게 그 실수의 피해가 없거나 크지 않기 때문에 느낌 또한 축소되어 전달된다. 따라서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공감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공감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같은 내용을 감성을 활용하여 만든 영화와 감성을 제거하고 객관적으로 문서로 만든 보고서가 주는 느낌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집중과 집착의 차이
그렇다면 ‘집중’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는 다 알 듯이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 붓는 것”이다. 좀 더 살펴보면 “다음 대상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대상 앞에 잠깐 멈춰 이를 별개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P.M 포르니 정의)이라고 설명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른 ‘집중’을 하루에도 수없이 경험하지만, 포르니의 정의처럼 구분하여 집중력을 발휘한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도가(道家) 철학에서 인위적인 행위 중 최악의 것은 ‘무엇에 대한 고정된 마음’이라고 했다. 집착을 말한다.

집착은 항상 편견을 만들어낸다. 승리자나 혁신자들은 현재의 승리 내지 혁신을 자신의 아이디어와 역량으로 일궈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는 집착으로 연결된다.

과거의 승리한 기억이 강한 리더일수록 자신의 경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그리고 그 경험을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부분에 적용시키려한다. 그러나 주어진 과제와 상황은 매번 다르다. 결국 자신의 경험에 대한 무한신뢰는 자신의 시야를 좁히게 되고 해당 프로젝트까지 망치게 된다. 그래서 멀리해야 하는 것이 집착이고 편견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을 처음에 무시했던 IBM이나 기계식 시계만이 시계라는 자존심과 그들의 기술력에 대한 무한 신뢰가 위기를 불렀던 1970년대 말의 스위스 시계산업. 이들의 행동이 바로 편견과 집착의 결과였다.

집중과 집착의 차이는 ‘과정’에 애착을 갖느냐, 아니면 ‘결과’에 애착하느냐이다. 실수를 반복하게 하는 집착은 ‘결과’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편견에 휩싸이지 않는 생각을 하기 위해선 ‘과정’에 집중하는 장구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은 멀리 장구하게 한다”
“아아! 삼가 그의 몸을 닦고 생각을 오래하면 구족이 화목해 질서가 서며 여러 밝은이들이 도우면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까지 잘 다스려지는 길이 여기 있습니다.” 《서경》 〈고요모(皐陶謨)〉 (올재판)

《서경》에서 말하는 생각이다. 고요가 순 임금에게 한 충언 중에 한 대목이다. 고요는 순 임금 당시 법을 관장하던 인물이다. 그는 순 임금에게 좋은 임금이 되기 위해선 ‘생각을 오래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송나라 때의 진덕수가 쓴 제왕학 교과서인 《대학연의》(이한우 역)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생각은 멀리 장구하게 한다(思永 사영)’는 것은 생각을 멀고 길게 하면서 동시에 쉬지 않고 한다(不息 불식)는 것입니다. 임금이 된 자가 어찌 몸을 마땅히 닦아야 함을 모르겠습니까마는 이 마음이라는 것이 한 번 놓아버리면 능히 잠시 동안 바르게 있을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한결같지 못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쉬지 않고 항상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부지런함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대학연의》

주인이 없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쉬지 않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멀리 장구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고 삿된 마음이 자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지도자가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생각의 힘이다. 모든 것을 항상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익숙한 것까지 낯설게 바라보면서 생각하는데서 실수를 막는 인간의 지혜가 도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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