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생각’ <4>

한 발 물러서서 관조하듯 봐야 보이는 세상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돌다리도 두들겨보며 건넌다는 속담이 있다. 매사 점검하고 확인해야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일게다.

그런데 젊음은 때로 우리에게 그 점검과 확인할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자신감으로 채워진 젊음 그 자체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거쳐야 할 단계를 건너뛰게 만든다. 그래서 속도는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잘못될 경우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인간으로서 최고의 장인인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을 탈출하기 위해 밀랍으로 연결된 새의 깃털 날개를 만든다. 그리고 아들 이카로스와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카로스의 젊음을 걱정한 다이달로스는 태양에 가까이 가지 말고 적당한 거리에서 비행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기쁨에 도취된 이카로스는 모든 위험을 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하늘로 올라간다. 결과는 모두가 다 알 듯이 추락하는 이카로스다.

인간은 이처럼 오만한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이를 우리는 휴브리스(신에 대한 오만한 행위)라고 이야기한다. 이카로스 외에 휴브리스의 사례는 그리스로마신화에 여럿 등장한다. 베짜기와 수놓기의 달인이었던 아라크네와 테베의 왕비였던 니오베 등도 모두 휴브리스의 댓가를 철저히 지불한다. 아라크네는 아테네 여신에게 베짜기에 도전했다가 패배한 뒤 거미로 변했고, 니오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인 레토보다 더 많은 것(아이와 재산 등)을 가졌다고 떠벌리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쏜 화살에 자식을 모두 잃고 만다.

그럼 이 같은 오만은 왜 일어날까? 오만에 대한 여과장치는 우리에게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눈앞만 바라보다 저지르게 되는 실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실수는 대체로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신화 속 이야기처럼 말이다.

◆자기생각을 갖기 위해선
프랑스의 문필가이자 사상가인 알베르 카뮈는 젊은 사람들은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본다고 말한다. 정면승부의 결과가 죽음이나 허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직접 체험하지 못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경우가 많아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젊음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2차 대전의 잔혹함을 겪은 유럽의 젊은이들은 파괴된 풍경 앞에서 음산하기까지 한 거리의 살풍경을 체험해서일까? 카뮈는 이들이 환상을 가질 여유도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이들에게는 그럴 시간도 경건함도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카뮈의 눈에는 이들이 정면으로 세상과 맞설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다음은 그의 글을 모은 책 《또 다른 생을 사랑하는 그것마저도 나의 행복입니다》에 실린 내용이다.

“사람들은 그저 몇 가지 익숙한 생각들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불과 두세 가지 생각들을 가지고, 오가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세계의 틈에 끼어 그 생각들을 반들반들해지도록 닦거나 이것을 변모시킨다. 이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다라고 제대로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데 10년이 걸린다.” (알베르 카뮈)

정면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익숙한 몇 가지만 머리에 담고 살아가는 근대적 인간을 꼬집듯이 카뮈는 비판하고 있다. 그런 인간이기에 좌충우돌하며 10년의 시간을 흘려보낸 뒤에나 제대로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자기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10년쯤 자신의 생각을 갈고 닦는다는 말에서 10년은 꼭 물리적 10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의미하는 것이다. 카뮈의 말처럼 세상사에서 한 발자국쯤 떨어져서 관조하듯이 바라보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낯설게 다가서지 않으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는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정말 자기 자신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10년이란 시간에 절망할 수도 있다고 카뮈는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을 단련시킬 때만이 통찰력을 얻게 된다는 카뮈의 이야기는 짧은 호흡으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 한마디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단테의 《신곡》 등에는 절망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굴복하지 않고 세상에 맞서면서 자신을 극한까지 내몰았던 인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카뮈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이 주인공들이 자신의 문명과 마주서면서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인간으로서 세상과 맞설 수 있는 그런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자기중심을 세우고 낯설게 세상을 맞이할 때 생각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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