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한국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현재 500조원(7월 말 기준)으로 세계 5위에 해당되는 초대형 연금이다. 5년 후엔 850조원을 넘어서고 30년 후에는 25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이미 국내 금융시장이 흡수하기에 벅찬 규모로 성장했지만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향후 급격한 규모 변화가 예상된다. 금융위기가 닥칠 경우 대규모의 자산 매각이 이뤄져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도미노 현상으로 국민연금 자산가치가 대폭 하락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인 규모에도 불구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운영의 실태, 이 문제의 원점은 전문성과 책임감이 부재한 국민연금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기금운용위원들 … 기본 투자개념조차 이해 못해
국민연금기금의 ‘2013년 제3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2013년 말 총 484조원인 적립금이 지금의 제도 틀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35년엔 GDP 대비 49.4%, 2043년 2561조원으로 최대 규모에 도달한 후 2044년에 처음 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불과 16년 만인 2060년에 소진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금규모 단계별로 민첩하고 전문적인 대응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연금 기금운용 회의록을 살펴보면 안건을 설명하는 담당공무원이나 설명을 듣는 위원들 모두 전문성 부족으로 금융투자 관련 개념에 대한 질의응답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기금운용의 기본개념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위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기금운용위원회에 상정해도 통과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안건은 아예 올리지 않고 수익률 제고를 위해 헤지펀드 투자 등이 반복적으로 기각돼 온 것도 기금운용위원들의 전문성 부족 때문으로 지적돼 왔다.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가장 상단에는 보건복지부가 자리잡고 있다.

기금운용 계획 수립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기금운용 계획을 발의하고 승인하며 통제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 역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

기금운용 성과를 좌우하는 기금운용 계획의 발의와 의결 모두 보건복지부 장관의 책임하에 놓여있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주체는 이사회에 해당되는 ‘기금운용위원회’와 경영진에 해당되는 ‘기금운용본부’로 위원회가 운용본부의 대표를 임명하고 시행과정을 감독하게 돼 있다.

하지만 현재 기금운용본부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관리공단 내 한 조직으로 기금운용본부장은 공단 이사장의 추천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하며 공단 이사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자산운용부서의 견제 역할을 담당하는 리스크 관리부서 또한 기금운용위원회가 아닌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직접 지휘 감독해 독립성이나 책무성 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평가체계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기금운용에 대한 평가는 1년에 1회 국민연금연구원과 외부전문기관에 의해 이뤄지고 이를 기금운용위원회가 추인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외부전문기관에 위탁하는 평가는 1차적인 위탁주체인 연금공단 이사장의 의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공단 이사장으로서는 자신의 권한 하에 있는 부서의 평가 결과에 본인의 성과평가나 평판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해상충 문제가 불가피하다.

반대여론 속 수 차례 개혁 시도 ‘도로아미타불’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금융투자자의 전문성에 대한 불신과 수익률 제고보다는 복지인프라와 같은 공공적 사용이 중요하다는 반대 속에 여러 번 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러한 교착 상태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 지배구조 개선 원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금융전문가로 구성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독립시킨 기금운용본부의 실질적 이사회로서 감시와 통제 기능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또 기금운용위원회를 포함한 기금운용 의사결정 전반을 금융부문의 전문성을 가진 외부감독주체가 감독하게 하고 기금운용위원의 의무와 미이행 시 법적 책임의 내용 또한 법조항에 명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공공성이 복지투자를 의미한다는 주장과 같은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공공성 원칙의 모호성을 축소하고 가입자 이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금융시장이나 거시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재무적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수준에서 공공성을 재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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