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퇴직연금 현황 설문조사

회사 규모 작을수록 운용 사업자로 은행 선정
기존 거래관계 영향력, 은행이 타업권 대비 3배 ↑
미도입 기업 81.1% ‘퇴직연금 도입 계획 없어’

<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2005년 퇴직연금제도 시행 후 지난 10년 동안 퇴직연금은 순조롭게 확산돼 왔지만 점차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도입률 격차가 벌어지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퇴직연금제도는 올해 9월 기준으로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이 29만개, 가입자가 568만명으로 전체 상용근로자의 51.6%가 가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300인 이상 대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81.2%인 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16.6%에 불과하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중소기업 퇴직연금 확산을 위한 개선과제 도출을 위해 근로자 30~300인 미만 중소기업 600여곳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운영현황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결과 예상대로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의지 및 인식은 크게 부족한 상태였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은 퇴직연금을 도입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3분의 2 이상이 퇴직연금이 의무화될 때까지 도입을 미루고 있다고 답했다.

또 도입계획이 없는 기업 중 33.9%는 퇴직연금이 의무화된 이후에도 제도를 도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계획을 살펴보면 현재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81.1%가 퇴직연금 도입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으며 이는 기업 규모별로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가장 작은 규모의 30~50인 미만 기업이 74.7%로 집계됐으며 100~200인 미만 기업은 81.3%, 50인~100인 미만은 86.2%, 가장 큰 규모인 200~300인 미만의 기업도 82.1%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도입계획이 없는 중소기업 중 66.1%는 퇴직연금이 의무화되면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답해, 중소기업 중 상당수가 정부의 퇴직연금 의무화 계획에 따라 도입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의무화 이후에도 퇴직연금을 도입할 가능성이 낮은 기업은 3곳 중 1곳(33.9%)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대부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가장 적은 기업들로 퇴직연금 도입 의지는 기업의 자본 규모와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매출액을 기준으로 봤을 때 퇴직연금 도입기업(328.6억원), 도입계획이 있는 기업(278.3억원), 의무화되면 도입할 기업(183.8억원), 의무화 외에 다른 계기가 있을 때 도입할 기업(130.3억원) 순으로 나타나 매출액 순으로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의 비중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균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봤을 때도 퇴직연금 도입기업(19.9억원), 도입계획이 있는 기업(12.2억원), 의무화되면 도입할 기업(8.7억원), 의무화 외에 다른 계기가 있을 때 도입할 기업(4.2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의무화 이후에도 퇴직연금 도입 가능성이 낮은 기업들의 경우 ‘회사의 이익규모 또는 자금력이 좋아지면(67.9%)’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며 ‘근로자(노동조합)가 요구하면’이라고 답한 회사도 46.4%를 차지했다.

3대 장벽 ‘돈·부정적 인식·무관심’
중소기업이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요인은 단순히 한가지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설문조사 결과 자금부담, 근로자들의 부정적 인식, 경영진의 무관심 등 다양한 이유가 중복돼 도입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담금(적립금) 및 수수료 납입 등 ‘재무적 부담’을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응답한 기업이 27.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퇴직연금제도에 대한 ‘근로자들의 부정적 인식’과 ‘경영진의 무관심’도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반면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들은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퇴직연금제도에 대한 지식부족’을 꼽았다.

도입 기업들은 대부분 ‘제도에 대한 지식부족(36.5%)’과 ‘도입절차 및 운영업무 관련 역량부족 (15.5%)’ 등을 장애요인으로 답했으며 ‘경영진의 무관심’은 3.4%로 미도입 기업(20.0%)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를 보였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이 같은 결과는 퇴직연금 미도입 기업이 자금부담, 근로자들의 부정적 인식, 경영진의 무관심이라는 3대 장벽을 넘어서도 실제 도입과정에서 실무적인 지식 및 역량부족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퇴직연금사업자 수는 평균 1.7개사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사업자 수를 조사한 결과 한 곳의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해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가 65.9%로 가장 많았고 2개가 18.3%, 3개는 6.7%, 4개 이상은 9.1%를 차지했다.

규모별로 살펴보면 평균 퇴직연금사업자 수는 30~50인 미만 기업이 1.5개사, 50~100인 미만 기업 1.5개사, 100~200인 미만 기업 1.7개사, 200~300인 미만 기업은 가장 많은 2.3개사로 조사돼 규모가 클수록 선정된 사업자 수도 증가했다.

금융업권별로 사업자를 살펴보면 은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중소기업의 퇴직연금사업자로 선정된 비중은 은행이 87.2%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다음으로 생명보험(19.4%), 증권(11.8%), 손해보험(9.0%)의 순이었다. 중소기업 가운데 은행 한 곳 만을 퇴직연금사업자로 둔 경우도 절반 이상(57.2%)을 차지했다.

규모별로 보면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퇴직연금사업자를 은행으로 선정하는 비중이 높고, 규모가 클수록 생명보험사 또는 증권사를 사업자로 선정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래관계에만 의존…제도운영 질 하락 우려
중소기업이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할 때 기존 거래관계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거래관계란 은행의 경우 기업과의 대출관계, 증권은 주식 또는 채권인수 등 투자관계, 보험사는 기존 퇴직보험 거래관계 등을 의미한다.

이번 조사결과 퇴직연금 도입기업 중 절반(51.7%) 이상이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할 때 기존 거래관계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관계의 영향은 모든 금융업권에서 골고루 나타났는데 은행(54.8%), 생명보험(53.8%), 증권(46.4%) 순으로, 특히 ‘매우 영향을 받았다’는 비중이 타업권에 비해 은행이 3배나 큰 것으로 조사됐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퇴직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중소기업 근로자의 노후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퇴직연금 의무화 일정을 제시해 중소기업 퇴직연금 확산을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 사업장의 퇴직연금 의무화 정책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발의됐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특히 제도를 도입한 기업의 증가세가 2012년 46%에서 2013년 25%, 2014년 8%, 2015년(9월) 6%로 둔화되고 있어 퇴직연금 확산을 위한 의무화가 더욱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춘 퇴직연금제도 도입 지원전략도 수립해 의무화 이전에 집중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 의무화 이후에도 제도에 대한 근로자의 부정적 인식이나 경영진의 무관심이 여전하다면 중소기업의 퇴직연금제도 도입 자체가 지체될 수 있다.

또 퇴직연금 관련 정보 수집이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쉽고 간단한 교육 프로그램과 자료를 마련해 의무화 일정 이전에 대대적으로 실행 및 배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밖에 중소기업이 퇴직연금 도입 과정에서 당면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즉각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핫라인(hot-line)과 관련조직을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거래관계라는 외적 변수보다는 퇴직연금의 건전한 운영에 초점을 둔 사업자가 선정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며 “거래관계에 의존해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하면 더 나은 역량을 갖춘 사업자를 활용할 기회를 잃어 제도운영의 질이 떨어지고 근로자 노후자금 마련에 차질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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