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혁신’ <3>

 
글로벌 경영진 비즈니스 전략 중심에 ‘기술’
금융권 80%, 여전히 ‘점진적 혁신’으로 대응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세상을 지배하는 중심요소가 ‘기술’로 모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었고 인류가 부를 생산해내는 마지막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2015년,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진들은 한결같이 기업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기술’을 들고 있다.

아이비엠(IBM)이 최근 발표한 C-suite보고서 <새로운 경쟁의 도래>에 따르면 70여개국 5247여명의 최고경영진들은 2012년 이후 4년 내리 ‘기술요인’이 기업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적 요인이라고 응답했다. 기술이 비즈니스 전략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인프라이자 새로운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하는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답변 이유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이달 초에 발표한 보고서 <2015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서도 1500여명의 다양한 업종의 기업 임원들은 향후 3~5년에 걸쳐 가장 중요한 혁신과제로 ⑴신기술의 신속한 수용, ⑵빅데이터 분석, ⑶기술 플랫폼, ⑷운영프로세스를 꼽았다. 기업이 직면한 혁신과제 모두 ‘기술’에 속하거나 관련된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올 초 연례 글로벌 CEO조사보고서를 냈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자료도 매한가지 트렌드를 보이고 있다. 대다수의 CEO들이 디지털 기술 투자를 비즈니스를 위한 가치 창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투자부문에 대해서도 고객 참여와 데이터 분석을 위한 모바일 기술이라고 구체적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민감하게 ‘기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과거에 비해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이며 경계의 구분 없이 진행되고 있는 ‘파괴적 혁신’의 중심에 ‘기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파괴적 혁신
그동안 ‘파괴적 혁신’의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금융권도 다른 산업과 별반 차이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지난 세기 말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 기반의 뱅킹 시스템과 증권중개회사가 등장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존 금융권은 이 같은 신생기업들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유는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환경이 모바일 환경으로 빠르게 이행되면서 기술을 무기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들을 더 이상 좌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제, 기존 금융권이 ‘파괴적 혁신’을 스스로 진행시키지 않으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하고 웹브라우저가 우후죽순으로 개발되던 10여년 전, 인터넷을 사용하던 사람은 전세계에서 약 5000만명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에 접속한 ‘커넥티드 인류’는 20억명을 상회하고 있다. 또한 휴대폰을 통한 모바일 접속 인류는 혁명적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10년 정도가 흐른 뒤에는 약 50억명 정도가 인터넷에 접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자 은행이 디지털로 변신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유명 벤처 투자가이자 ‘넷스케이프’ 브라우저의 공동 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지난해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금융거래는 숫자에 불과하다.
단지 정보일 뿐”이라고 말하고 “오늘날의 금융서비스는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이전의 방식으로 금융업에 뛰어들 수 었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그는 “은행의 해체”까지 언급한다.

그의 이야기는 핀테크와 통신네크워크로 무장한 신생 은행들이 펼칠 ‘파괴적 혁신’의 파워가 강력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은행의 변신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은행의 CEO도 등장하고 있다.

스페인의 BBVA 프란치스코 곤잘레스 회장은 올 초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5> 행사의 기조연설을 통해 “디지털화하지 못하면 은행은 망할 겁니다. 은행은 이제 소프트웨어회사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5년 안에 우리 은행 직원의 절반은 디지털 업무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점진적 혁신 여전히 우세
그런데 여전히 국내 금융권은 물론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파괴적 혁신’보다는 기존 보유 기술 및 사업의 테두리 안에서 서비스를 개선하거나 확장을 모색하는 점진적 혁신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PwC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기관의 약 80%는 점진적 혁신, 크리스텐슨의 개념에 따르면 ‘존속적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보수적인 금융 산업의 성향 때문에 IT, 리테일 등의 시급한 혁신대상에 대해 큰 틀에서의 변화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점진적 혁신으로 기술로 무장한 신생 금융회사들과의 효과적인 경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문명에서 생겨난 주된 발전들은 거의 모두 자신의 모태인 그 문명을 침몰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말한다. 금융이라는 문명도 기술이 주도하는 문명에게 그런 대우를 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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