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게만 유리한 제도…출발점부터 불리해

<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올해 3월 시행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투자일임계약형이 허용되며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은행은 현재 투자일임업이 허용되지 않은 상태다.

금융당국은 당초 신탁업 허가를 받은 금융사만 ISA를 취급할 수 있도록 했지만 지난달 31일 투자일임계약형 ISA를 허용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 했다.

현재 국내에서 신탁업은 은행과 대형증권사 일부만 라이센스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일임업은 중소증권사와 종금사도 등록돼 있어 ISA를 취급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은행권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투자일임형이 ISA 유치 경쟁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신탁형은 고객의 지시가 있어야만 재산을 운용할 수 있지만 투자일임형은 금융사가 직접 고객의 재산을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운용권한을 가진 투자일임형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제도인 만큼 홍보나 마케팅도 중요한데 투자일임형은 신탁형에 비해 가입절차가 간단할 뿐만 아니라 광고나 취급할 수 있는 상품 폭 또한 넓어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자일임형까지 ISA를 확대한 것은 전적으로 증권업계에 유리한 제도”라며 “가입절차만 해도 은행은 신탁법 규제 아래 수많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지만 증권사는 간단하게 처리된다.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고 반발했다.

은행연합회는 ISA제도 운영 시 금융권 전체에 공평한 룰을 만들어달라는 입장이다.

신탁법 내에서는 은행에 방문한 고객이 ISA계좌에 가입할때 예∙적금 상품으로 자행의 상품을 추천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저축은행 등 계열사의 예∙적금 상품 추천도 불가능하다. 반면 증권사는 ISA 가입 고객에게 자사의 예적금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예∙적금 상품의 판매 통로가 막힌 셈이다.

은행연합회 측은 이미 투자일임형이 허용된 상황에서 이같은 불이익을 막기 위해 가입절차나 취급가능 상품 등 판매 조건만이라도 동일하게 만들어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ISA 자체가 예∙적금 보다는 투자형 상품에 국민들의 자산을 배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며 “증권사 입장에서는 자산관리사업의 마켓쉐어를 늘릴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은행권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중이다.

예대마진을 벗어나 새로운 수익 창출을 고민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자산의 직접 투자가 가능한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향후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고객 이탈을 우려한 증권업계는 은행이 투자일임업에 진출해 위험 상품을 파는 것은 은행업의 본질에 위배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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