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시간’ <2>

 
칼 세이건 ‘우주달력’으로 겸손해질 것 요청
‘석가, 예수, 마호메트’ 1초 차이 쌍둥이 같아
지구는 우주의 떠있는 ‘창백한 푸른 점’일뿐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이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늙었고 인류는 너무나도 어리다”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유명 SF소설의 작가이기도 한 칼 세이건의 책 《에덴의 용》의 첫 문장이다. 우리에겐 TV 다큐멘터리로 상연된 바 있는 《코스모스》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뇌과학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밝히기 위해 《에덴의 용》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유명해진 것은 ‘우주달력’이라는 그의 혜안이 담긴 글 때문이다.

138억년이나 되는 우주를 인간의 달력 1년으로 압축, 환산하여 정리한 우주력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 이 책의 첫 문장에 해당한다. 138억년이 된 우주이지만, 인류는 1년 중 하루에도 못 미치는 시간을 생존해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의 산법에 따르면 우주년(138억년을 1년으로 환산)의 1초는 475년이며 인간이 사는 생애 100년(최대)은 우주년의 0.21초에 해당한다. 이 같은 계산을 적용해 우주년 전체를 조망하는 것의 의미는 인간의 실존적 가치에 대한 자각을 한 눈에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칼 세이건이 이 글에서 독자들에게 요청하는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우주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38억년의 우주 나이를 1년의 시간으로 환산할 경우, 흔히 말하는 빅뱅은 1월 1일 0시에 일어났으며,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계는 5월 1일에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리 태양계의 태양은 8월 31일, 지구는 9월 14일에 태어난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상상하고 있는 공룡들의 전성시대는 크리스마스나 되어서야 개막된다.
공룡시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간은 우주력에서 고작 닷새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속한 유인원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12월 31일 우주력의 마지막 날 새벽 6시다. 그리고 이 날 23시, 즉 밤 11시나 돼서야 구석기 시대가 시작되고 현생 인류가 출현한 것은 밤 11시 52분, 그리고 유럽의 여러 지역에 벽화가 그려진 것은 밤 11시 59분이다. 나머지 인류가 이룩한 신석기혁명과 농업혁명,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찬란한 문명은 물론 장대한 중국의 역사와 산업혁명 및 근대화에 이르는 시기, 즉 우리가 역사책에서 주로 읽고 접하는 이야기는 마지막 1분 동안 펼쳐진다.

특히 그 1분 중 마지막 10초 동안 인류는 획기적이며 눈부신 활약을 펼치게 된다. 11시 59분 55초에 석가모니 탄생, 56초에 예수, 그리고 57초에 마호메트가 탄생한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종교의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쌍둥이처럼 1초 간격으로 탄생한 것이다.

칼 세이건은 아등바등 거리고 쉼 없이 다투기만 하는 인류에게 서로 싸우지 말고 공존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우주력’을 통해 인간이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임을 자각시켜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마음을 이어 받은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와 관련 “우리는 기껏해야 아주 평범한 별에 속한 보잘 것 없는 행성의 고등한 원숭이 종족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덕분에 꽤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덧붙인다.

그럴 수 있는 것은 64억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전송된 사진 한 장과 지구의 대기권 밖으로 나가 푸른 지구를 바라본 우주비행사들의 체험이 크게 한 몫하고 있다.

64억 킬로미터 밖에서 지구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25년 전인 1990년,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날 때 칼 세이건이 많은 과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양계 가족사진 한 장의 의미가 더 크다고 설득해서 갖게 되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사진 중 가장 멀리서 지구를 찍은 사진으로 남아 있다.

칼 세이건이 펴낸 책 《창백한 푸른 점》은 이 사진 때문에 붙여진 지구의 또 다른 별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세이건은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64억 킬로미터만큼은 아니지만 1000 킬로미터 밖에서 지구를 본 우주 비행사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인식의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 높이에서 지구를 보았을 때 겪는 새로운 충격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지구에 대한 경외심’이다. 그 생각은 인간관계를 넘어서 지구 위에 존재하는 생명체 간의 관계까지 연결되었다고 말한다. 흔히 이를 ‘조망효과(Overview Effect)’라고 한다.

인공지능 등의 최첨단 과학기술로 새로운 단계로 이행할 것이라고 말하는 현재의 시간은 우주력의 마지막 1초 속에 있는 시간이다. 멀리 떨어져서 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폐쇄적 감옥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새해는 우리 스스로 ‘조망효과’를 위기의 순간마다 꺼내들어 내 얼굴을 보는 거울처럼 사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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