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시간’ <3>

 
기다리지 않으면 숙성된 포도주 맛 못 봐
현대사회, 시간과 인내 균형점 ‘70% 승률’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내와 시간이야말로 내 싸움의 영웅이다”

유럽을 장악한 나폴레옹의 잠재적 경쟁자 짜르(러시아의 황제)가 사는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입장에선 눈엣가시였다. 그런 러시아의 짜르가 영국과 소통을 하자 6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에 진격한다. 파죽지세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등을 점령했던 나폴레옹군은 단지 3주일의 보급품만을 가지고 광활한 대지로 달려 들어갔다.

이 같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기(1812년)를 다룬 소설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이며, 위의 인용구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폴레옹군을 맞이한 러시아의 사령관 쿠투조프 장군의 혼잣말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프로이센의 전략가이자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을 반박하고자 했다. 톨스토이의 전략관은 클라우제비츠와 대척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력한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역사적 상황을 이끌거나 풀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 속의 쿠투조프가 보인 수동성을 아둔함보다는 지혜로 해석했고, 사령관의 명령보다는 군대 전체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설명했다고 《전략의 역사》의 저자 로렌스 프리드먼은 말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쿠투조프는 사과는 다 익을 때까지 딸 필요가 없다고 소설 속에서 되뇐다.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익었을 때 사과를 따면 열매는 물론 나무까지 상하게 된다고 톨스토이는 쿠투조프의 입을 통해 말한다.

톨스토이의 눈에 광활한 대지, 러시아에 들어온 나폴레옹은 설익은 사과를 따는 서리꾼 정도로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식량은 물론 보급품을 전해줄 세력조차 없었던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함락한다고 해도 눈 하나 깜박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공격을 피할 다른 땅이 있었으며 배고픔을 달랠 식량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간과 인내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인내는 하나가 되어 큰 힘을 발휘하곤 한다.

17세기 스페인의 사제이자 저술가인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톨스토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남겼다. “시간과 정성이 없이 좋은 결실은 얻을 수 없다”

포도주가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포도주는 본연의 맛을 내기 보다는 떨떠름한 맛을 낼 뿐이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흘러 발효가 제대로 되면 포도주 특유의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지혜와 통찰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가 숙성되듯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섣부른 욕망의 표현이 부른 비극은 셀 수 없이 많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맥베스 장군과 부인은 왕이 된다는 마녀들의 예언에 격앙된다. 그리고 조급하게 권력을 쟁취한다. 그러나 조급하게 미래를 앞당길 수 없다는 것이 이 희곡의 결론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인내하지 못하는 수도원장을 보고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는 견습 수도사 아드소에게 “조급하게 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토록 많은 개개인의 사소한 경험을 모아 진실을 밝히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윌리엄 수도사가 말하는 시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포도주가 잘 숙성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 인생이든 사업이든, 국가의 명운이든 결정을 해야 하는 타이밍은 매우 중요한데 사안마다 다른 그 시간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70%의 승률을 확신할 수 있을 때라고 말한다.(아타가키 에이켄 《손정의 제곱법칙》)

“이길 확률과 질 확률이 반반일 때 싸움을 거는 자는 어리석다. 승률이 10%나 20%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반대로 승률 90%라는 숫자가 70%보다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 이유는 뭘까?
우리 디지털 정보 산업계에서는 승률이 90%가 되었을 때 움직여서는 너무 늦기 때문이다. 승률 90%를 추구하면 이론상으로는 싸움의 진형을 완벽히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용기를 내어 참전했을 때는 이미 싸움이 끝난 후일 수가 있다”

21세기 기술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성공한 기업가 손정의는 시간과 인내의 균형점을 70%의 승률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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