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시간’ <4>

 
과거형 문장은 책임소재 가리는 법정 수사법
시간 장악하기 위해선 현재·미래형 설명 필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하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듣기 싫은 게 군대 이야기라고 한다. 특히 군대 축구 이야기를 더 듣기 싫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유는 공감의 영역이 없는 데다 말하는 화자에게도 말하는 순간은 몰라도 뒤에 느끼는 감정은 ‘싫증나는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인이나 조직이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처럼 과거의 경험을 생각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경험이 조직의 일을 처리하는데 소중한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겠지만, 대개의 경우 ‘과거’는 혁신을 도모하는 사람에게 부적합한 결과를 도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수사학》에서 과거시제의 말들은 재판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법정 수사학’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학이라는 의미다.

미국의 언론인 제이 하인리히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토대로 쓴 책 《카이로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발생하는 사건의 모든 쟁점은 세 가지로 모아진다고 말한다. 위에서 말한 ‘책임소재’, 그리고 ‘가치’와 ‘선택’이다.

‘책임소재’는 앞서 말했듯이 정의를 주요한 기준으로 삼고 과거의 일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어떤 일의 시작을 캐내거나, 연쇄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의 말들은 모두 ‘과거’의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가치’는 낙태 및 동성혼 등 공동체의 지향점과 관련한 가치판단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판단을 요구하게 되며 좋은 것과 나쁜 것, 칭찬과 비난, 다수와 소수 등을 구분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현제시제의 말들은 특정 공동체의 이상에 부합하느냐, 아니면 부합하지 않느냐를 규정하는데 주로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끝으로 ‘선택’은 쟁점 자체가 ‘미래’의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미래와 연관된 문제를 다루게 되며, 표현법 또한 미래시제를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선호했던 시제기도 하다.

이유는 특정 문제에 대한 ‘선택’은 현재의 결정이 미래의 일을 좌우하게 되므로 논의하는 양측(혹은 다수) 모두가 만족하는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쟁점은 선택이라는 행위와 함께 해소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실용적인 수사법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미래시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거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가진 사람들은 유독 자신의 경험론에 토대한 이야기를 선호한다.

지난 2004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하워드 딘은 한 때 정치적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과거시제의 화법을 주로 사용해 미 대선에서 낙선하고 만다. 강한 근성과 권력욕은 긍정의 힘을 발휘했지만 각종 연설과 인터뷰에서 그는 마르고 닳도록 과거시제를 사용했다고 한다.

미래를 향한 지향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리더는 정치와 경제를 구분하지 않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다. 과거형의 문장으로 혁신을 정의할 수 없고, 재창조를 설계할 수 없으며, 모험을 감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신 주창자들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2016년은 ‘변화와 혁신’이 경영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시기이다. 그리고 유사 이래 기술의 사회에 대한 장악력이 가장 높은 시기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기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공간이며 이러한 경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혁신의 주창자로 나서지 못하면 추세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의 주인으로서 시간을 장악하기 위해선 말하는 방법부터 가릴 필요가 있다. 과거형의 표현은 법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 밖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자. 숨겨져 있는 변화와 혁신의 힘을 미래시제에서 꺼내는 자가 바로 혁신의 주창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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