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BK기업은행 권선주 은행장

정치권 러브콜, 긴 호흡으로 은행 선택
그에게 남은 건 ‘잔여임기’만이 아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여성 최초의 은행장’과 ‘여성 최초의 은행장 연임’ 타이틀 중 무엇이 더 값지게 들릴까? 그런데, 그 가능성은 최초로 여성 은행장이 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그 가능성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사람은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한 사람 뿐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권의 러브콜이 명망가들에게 쏠리게 된다. 구태의연한 정당의 모습을 일신하듯 포장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정당은 새롭고 참신한 인물을 찾아 나선다. 그 유혹을 수없이 받은 사람도 권 행장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여의도행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속 깊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 같다.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은행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 바 있다. 그 말이 본심이든 아니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레토릭이든 그것은 별 상관이 없다. 이유보다 선택의 결과가 값져 보이기 때문이다.

금융인 출신 중 웬만한 ‘여성 최초’의 수식어는 권 행장이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는 금융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은행장이 된 이후 2년 연속 당기순이익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게다가 여권과도 우호적이며 미디어와도 친밀한 것 같다.

대학에서 가장 선호하는 강연자의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를 멘토로 삼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당연히 러브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웬만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아마 권 행장도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비례대표 신청 마감일을 넘겼다. 긴 호흡으로 잔여임기를 달리기로 한 것이다.

권력애의 유혹은 강렬하다. 각 정당에 직능대표를 자처하며 비례대표를 신청하기 위해 문지방이 닳도록 오가는 사람들의 면모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조건을 갖춘 사람은 대체로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다 준비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도 또한 갖추기 전까지와는 180도 다르다. 그런데 조건을 충분히 갖춘 사람은 항시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만든 기준이 더욱 엄격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선택은 긴 호흡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지난주 권 행장의 선택에 가장 안타까움을 표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권 행장이 국회의원이 되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일 것이다. 즉 차기 은행장으로 거론될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쯤 아닐까싶다.

하지만 그들의 안타까움보다 기술이 혁신을 주도하는 변혁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할 기업은행으로서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쉴 수 있게 됐다. 또한 금융권의 여성 후배들은 권 행장이 쓰는 역사만큼 새롭게 기회가 열리게 된다는 점에서 더 큰 나무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신년사에서 권 행장은 “상황에 끌려가면 위태롭지만 우리가 주도해 나가면 기회가 열린다”고 말 한 바 있다. 그리고 “변화는 어렵지만 변화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이 신년사의 인용구가 마치 자신을 말하는 듯싶다. 만약 그가 정치권을 선택했다면 권 행장은 십중팔구 여의도의 상황에 끌려 다녔을 것이다.

그는 지금껏 자신 앞에 주어진 상황에 끌려가기보다 헤쳐 나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 중심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금융문화에 섬세한 여성성을 가미시키면서 은행장에까지 오르는 과정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앞에 온 기회는 놓치지 않고 잡았다. 그 결과가 2년 연속 순익 1조원 달성이라는 성과로 나온 것이다.

권 행장은 IBK기업은행의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 위기 속에 꽁꽁 숨어 있는 기회를 찾자고 말한다. 그 기회가 핀테크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기술에 대한 안목과 걸맞은 투자가 기업은행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 것이다. 그리고 권 행장에게도 그럴 것이다. 남은 것은 잔여임기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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