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본다는 것’ <3>

 
마키아벨리, 고대인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 인식
강대국에 낀 민족현실 자각, 《군주론》에 담아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2500여년 전, 새의 발가락 모양을 하고 있는 북부 그리스 지역에 불온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아테네가 이끌고 있는 델로스 동맹 소속의 포티다이아가 바로 위에 있는 마케도니아의 지원을 받아 델로스 동맹(민주정 도시국가의 동맹체)에서 벗어나 과두정으로 이행하려 한 것이다.

포티다이아인들은 그리스 지역에서 당시 주요 국가였던 코린토스를 비밀리에 방문해 아테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한다. 게다가 막강 육군을 보유한 스파르타의 지원까지 약속받고 반란을 추진한다.

그런데 해상무역을 장악한 아테네가 이 같은 정보를 놓칠 리 없다. 그렇게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소크라테스는 시민으로서 3년 동안 이 전투에 참가한다. 용감하게 전투를 치렀던 그는 점차 전쟁의 반대급부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우선 동료이자 전우였던 아테네 병사들의 장례문제가 발생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죽은 자에 대한 장례는 시민의 덕목이자 예의였다. 그런데 전투에서 죽은 병사와 전염병으로 죽은 1000명 이상의 시민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게다가 아테네의 봉쇄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포티다이아인들이 배고픔으로 인해 식인까지 하는 모습을 본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아레테(탁월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포티다이아 평원에서 넋이 나간 채 유령처럼 멍하니 서서 스물네 시간 동안 서 있었다”(플라톤 《향연》)

이 전투에 같이 참전했던 알키비아데스의 증언이다. 알키비아데스가 본 소크라테스는 본질을 찾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린 그의 결론은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였다. 육체적 아름다움도, 용기도, 용맹스러움도 성찰을 통한 내적 충만이 없다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영향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 헬레니즘 철학의 근간이 된다.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론 키케로, 세네카 등 로마의 현인들도 같은 목소리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집중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리얼리스트 ‘마키아벨리’
그런데 서구의 지적 전통과 다른 길을 걷는 이단아가 르네상스기에 앞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등장한다.
외교관 및 외교담당 서기 업무를 처리했던 리콜로 마키아벨리가 바로 그다.

그는 고대인들과 다른 시각을 가지려 했다. 철저히 현실주의자로서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현실을 보고자 했다. 강대국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탈리아반도. 그런데 이탈리아는 당시 공화정을 채택한 피렌체와 베네치아, 공국인 밀라노, 페라라, 만토바, 그리고 나폴리 왕국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당연히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침략에 무방비 상태였다.

이런 민족적 한계를 벗어던지기 위해선 지도자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군주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전의 논자들이 내세운 원리로부터 철저하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 깊은 독자에게 무언가 유용한 것을 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나는 이 주제에 관해 나의 공허한 상상에 의존하기보다는 실제적인 진술을 기술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를 지배했던 도덕적 선이나 종교적 선이라는 정치철학의 전통에서 벗어나 리얼리스트로서 이탈리아의 현실을 바라보겠다는 선언과 같은 문장이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책 《로마사논고》에서 “새로운 방법이나 방식을 발견하는 일 역시 미지의 바다나 대륙을 탐험하는 일 못지않게 늘 위험하기 마련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의 시도에 대한 시대의 비협조를 그는 어쩌면 예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날 것’ 그대로의 세상을 인식하고자한 노력은 근대를 여는 시작이었고, 그의 리얼리스트적 시각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국제정치는 물론 경제 경영부분에서 교범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시각은 20세기 영원한 청년이었던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문장에 녹아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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