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복 SC제일은행장

낙관성을 장기전망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성공하려면 오늘을 참아낼 시간전망이 길어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앞으로 미래를 봐야한다. 과거 10년 동안 큰 변화가 있었듯, 앞으로의 10년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

반년 만에 ‘제일’이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 브랜드명을 SC제일은행으로 바꾸겠다고 밝힌 박종복 은행장이 얼마 전 300여명의 직원들과 종로 본점에서 타운홀 미팅을 가지면서 한 이야기다.

은행 간판은 물론 각종 서식변경과 점포 인테리어 등 새로운 비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박 행장은 ‘스탠다드차타드’라는 국제적인 브랜드보다 ‘제일’이라는 토종 브랜드를 다시 찾고자 줄곧 노력했다.

이유는 ‘제일’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잃어버린 10년을 복원하고 싶은 그의 가슴 속에 켜켜이 묻어든 욕망 때문일 것이다. 박 행장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행했던 시절의 이름, ‘제일은행’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으니 그의 욕망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이름 하나만으로 과거의 영화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박 행장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년째 영업망이 줄고 있고 영업이익도 덩달아 줄거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SC제일은행의 현실을 은행의 수장으로서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이 은행 개명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타운홀 미팅에서 “잘해야 우리가 긍정적인 모습을 만들 수 있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하듯 말했다고 한다. 잘하지 않고 이름만 바꿔서 욕망을 현실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기와 변화의 시기에 필요한 리더의 최고 덕목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박 행장은 SC제일은행 직원들에게 ‘긍정성’이라는 영감을 ‘제일’이라는 단어를 통해 살려내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긍정성’은 그의 삶의 철학이자 신조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박 행장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비주류였던 자신이 은행장이 되기까지 길을 잃지 않고 한 길로 매진할 수 있게 한 원칙은 ‘긍정성’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류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고, 은행의 엘리트 코스라고 하는 종합기획부나 인사부, 국제부는 고사하고 본점 근무를 해 본적도 없는 그였다. 영업통으로 성장하면서 승진했을 때는 밤잠까지 설쳤다고 한다. 이런 저런 걱정이 꼬리를 물면서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고 고백한 박 행장은 이 시기를 견딜 수 있는 비책이 ‘긍정적인 마음’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박 행장은 자신이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 준 ‘긍정성’을 SC제일은행의 현재에 접목시키고자 한다. 아마도 할 수 있다면 SC제일은행의 DNA로라도 만들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조직의 DNA가 은행장의 말 한마디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탠다드차타드라는 이름이 갖는 정체성과 ‘제일’이라는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정체성은 분명 다르다.

잦은 은행명 변경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 행장은 그런 포인트를 읽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의 에드워드 밴필드 교수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일수록 시간전망이 길다고 한다. 사람들은 단기적인 희생이 장기적인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견뎌낸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일수록 견뎌내는 오늘의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가시나무새>의 작가 콜린 매컬로는 로마제국의 130년 정도의 역사를 다룬 7부작 책 <마스터 오브 로마>를 쓰기 위해 13년의 준비기간을 투입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쓰기 위해 마가렛 미첼은 20년 동안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에드워드 기번도 <로마제국쇠망사>라는 책을 쓰기 위해 20년의 시간을 준비했다. 이처럼 긴 준비기간을 견디게 해준 것은 그들의 ‘낙관성’이다.

박 행장이 ‘낙관성’을 기반으로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성공을 향한 그의 믿음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어느 정도까지 SC제일은행의 장기전망으로 연결될지 그의 실험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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