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은퇴연구소 김동엽 이사

1960년대 중반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에 살았던 잔느 칼망은 변호사에게 살던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매매조건이 조금 특별했다. 변호사는 잔느 칼망이 살아 있는 동안 매달 2500프랑을 지불하고 대신 그녀가 죽은 다음 소유권을 넘겨 받기로 했다. 당시 잔느 칼망 할머니의 나이는 90세였고 변호사는 47세였다. 계약조건은 두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할머니 입장에서는 죽는 순간까지 매달 일정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어 좋고 변호사는 크게 목돈 들이지 않고 싼 값에 집주인이 될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변호사에겐 90살된 잔느 칼망이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느냐는 계산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995년 변호사가 77세에 사망했을 당시 잔느 칼망은 12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변호사는 무려 30년 동안 매달 2500프랑(현재가치 50만원)을 꼬박꼬박 지불했지만 집주인이 될 수 없었다. 그가 낸 돈을 전부 합치면 집값의 두 배가 넘었다. 결국 변호사가 죽은 다음 가족들이 계약을 물려받았다. 잔느 칼망은 변호사가 사망한 다음 2년을 더 살다 1997년에 122세로 사망했다. 그리고 세계 최장수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결국 변호사는 싼 값에 집을 산 게 아니었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그녀의 집에 한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어리석었던 것일까?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순 없다. 그는 평균수명을 근거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저 재수가 없었던 탓일까? 문제는 거래 횟수에 있다. 변호사가 수천명의 아흔 살 된 할머니와 같은 조건으로 거래를 반복해서 할 수 있었다면 분명 이득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에게 주어진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사실 어떤 개인이 몇 살까지 살지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퇴직자 입장에서 정교하고 치밀하게 노후자금 인출 계획을 세우려면 평균수명이 아니라 자신의 기대여명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영·유아 사망률이 다른 연령에 비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성인들의 기대여명은 평균수명만 가지고 계산한 것보다 더 길다.

통계청의 연령별 사망확률을 보면 85세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 절반(50.3%)이 넘는다. 60세 은퇴자들이 기대수명에 딱 맞춰 노후자금을 빼 쓰면 죽기 전에 돈이 먼저 떨어져 파산하는 사람이 절반은 된다는 얘기다.

보험회사에서는 이 같은 평균수명을 이용해 연금상품을 만든다. 재수없는 변호사와는 달리 보험회사는 한 사람이 아니라 수백만명의 목숨을 대상으로 베팅을 한다. 잔느 칼망처럼 오래 사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보험회사 입장에선 걱정할 필요가 없다. 평균보다 일찍 죽은 사람이 덜 받아간 돈으로 이를 보충하면 된다.

우리가 평균수명이 85세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60세 은퇴자가 모두 85세에 사망하지는 않는다. 60대 초반에 죽는 사람이 있고 100세 이후에도 건강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잔느 칼망을 보면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은퇴자가 자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녀는 기대보다 오래 살 때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다. 죽고 난 다음 집 한 채 덩그러니 남겨놓기보다는 살아 있을 때 생활비 걱정을 더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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