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적 감수성 유지하면서 디지털 전략 추진
실리콘밸리사무소 확장·알고리즘 디자인랩 개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디지털’이라는 단어를 빼면 현대 사회는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소통의 모든 창구가 디지털로 바뀌었으며, 기업의 생산방식도 상당 부분 디지털로 넘어간 지 오래이다. 심지어 인간의 사고 틀까지 디지털로 정의하는 것은 물론 복제까지 가능한 세상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가히 디지털이 우리 사회를 재구조화하고 있다.

따라서 재구조화되지 않은 인류는 디지털이 주도하는 혁신의 한 복판에서 좌충우돌하듯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경영을 책임지는 기업의 대표들은 더욱 간절하게 말한다. 디지털혁신의 시대에서 낙오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디지털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경영자들이 디지털지상주의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을 중심에 두되 기존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유지하면서 디지털전략을 구사하는 경영인들도 있다. 현대카드의 정태영 부회장이 그런 경우다.

지난해 다른 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모바일 전용카드를 출시할 때, 그는 이 카드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할 만큼 아날로그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당시 정 부회장은 모바일 전용카드를 시류에 편승하는 느낌이라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손에 쥘 수 있는 실재(實在)하는 카드를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첫 선을 보인 모바일 솔루션은 카드가 아니라, 한도와 사용처 등을 사용자 개인이 관리하는 ‘락앤리밋(Lock & Limit)’과 가상카드번호 등을 발생시키는 모바일 앱이었다.

이 같은 그의 선택은 디지털을 무시하지 않되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디지털 구현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런 그의 접근방법을 이해할 수 있는 그만의 ‘디지털’관이 지난 25일 그의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디지털이 대세이다. 금융사인 현대카드도 ‘디지털 현대카드’로 변신 중이다. 몇 십 년 전에 태어난 애플PC도 엄밀히 말하자면 디지털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말하는 디지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군가는 모바일을 떠올릴 거고, 누구는 페이퍼리스를 말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디지털 DB이고, 누군가에게는 메모리칩일 것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르다. 모바일 휴대폰 등의 소통도구일 수도 있고, 종이가 필요 없는 비즈니스 환경의 구현 일 수도 있다. IT전문가들의 경우는 정보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활용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디지털을 알고리즘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음은 이어지는 정 부회장의 글이다. “나에게 디지털이란 모든 것의 뒷단에서 구동되는 알고리즘이다. 물론 알고리즘 자체는 디지털 기술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최근의 알고리즘은 디지털 방식에 의해 수집되는 유연하고도 엄청난 양의 인풋(Input)을 받아서 연산식을 돌리고 다양한 디지털 아웃풋(Output)을 생산하는 것이기에 디지털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다.”

그의 말대로 알고리즘 자체가 디지털은 아니다.

알고리즘은 인간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일련의 절차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절차가 대부분 컴퓨터에 적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알고리즘 자체를 컴퓨터 내지는 모바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알고리즘과 디지털을 정 부회장이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지난 달 회사 내에 새로 만든 조직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카드가 새로 만든 조직의 이름은 ‘알고리즘 디자인 랩’이다. 이 부서는 디지털 서비스를 고객에게 구체적으로 내놓는 방법을 모색한다고 한다. 고객의 구매패턴을 알고리즘으로 풀어내 고객이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사전에 등록한 쇼핑몰에서 로그인만으로도 결제가 가능한 온라인 결제서비스 ‘페이샷’을 출시했다. 이 서비스의 경우 정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대카드가 도입한 디지털 혁신 중 가장 파급력이 큰 서비스”라고 자부할 정도이다.

또한 지난 해 핀테크 관련 개발 및 해외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개설했던 실리콘밸리 사무소도 3배 정도 확장 이전한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출범 당시 4명이었던 직원도 현재 6명으로 늘렸으며, 그 중 2명은 현지 외국인으로 핀테크 및 IT전문가라고 한다.

정 부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현대카드의 ‘디지털 현대카드’ 경영전략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 방식은 아날로그와 함께 가는 디지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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