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올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퇴직연금은 크게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도는 모두 계약형으로 운용되고 있다. 금융회사에 퇴직연금을 맡기는 계약형과 달리 기금형 퇴직연금은 노·사·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퇴직연금 운용방향과 자산배분 등을 결정한다.

▨ 기금형, 연금제도 문제 해결할 묘수로 제안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실 발의로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은 신탁 형태로 별도의 기금을 설립하고 퇴직연금 적립금을 해당 기금에 신탁해 운용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및 연금시장 전문가들은 기금형 퇴직연금이 국내 연금시장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고 제안한다.

국내 DB형 퇴직연금은 금융회사에 근로자의 적립금 관리를 위탁하는 형태로 근로자의 참여가 제한되지만, 기금형 퇴직연금은 가입자의 의사에 따라 기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질 높은 운용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실질적인 수급권 보호를 위해 원리금 보장에만 치중돼 있는데 기금형 제도를 통해 자산을 운용할 수 있게 되면 수익률을 함께 높일 수 있다”며 “호주의 사례와 같이 중소기업들을 유사한 기업 특성에 따라 연합하면 규모의 경제까지 가능해 효율적인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금형 퇴직연금의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엄격한 수탁자 책임이 요구된다.

기금형은 근로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참여형 퇴직연금 제도로 가입자 보호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사기 사건 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2011년 투자자문회사인 AIJ가 연기금들이 위탁한 적립금을 불법 운용해 원금 1458억엔 중 95%인 1377억엔을 손실했다. 가입자 대부분이 중소기업의 저소득 근로자로 이들의 연금 대부분 손실돼 피해 기업과 일본 정부 모두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일본을 뒤흔든 이번 사기 사건은 연기금에 대한 감시·감독 부족과 무리한 자산운용, 수탁자 책임에 관한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연금시장 전문가들은 “금융사기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탁자 책임의무를 법률로 명시하고 연금사업자 특성별로 사업자 선정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금형 제도가 제대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연기금의 수탁자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자산관리체계와 연기금 의사결정기구에 의한 사후감시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수탁자 책임 강화되면 배상책임보험 필요

미국과 일본의 보험회사들은 수탁자 책임이 강화되면서 소송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수탁자 책임을 위반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 주는 수탁자배상책임보험 상품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수탁자배상책임보험은 수탁자가 근로자에게 큰 손해를 주었을 경우 해당 손해를 배상해 주는 보험이다. 미국의 ‘AIG’, ‘Chubb’, ‘Hanover’ 일본의 ‘Sompo Japan’ 등이 관련 보험을 개발해 퇴직연금시장의 위험을 인수하고 있다.

수탁자배상책임보험의 약관은 손해보험의 통일된 표준약관이 아닌 주로 해당 보험을 인수하는 주요 손해보험회사가 자사의 약관을 직접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기금형 제도를 도입, 운용하고 있는 미국은 에리사(ERISA)법에서 신중한 관리자 원칙에 기초해 수탁자에게 엄격한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수탁자 책임을 위반해 발생한 모든 손해는 수탁자가 개인적으로 배상하도록 책임을 부과하고 수탁자가 취득한 이익에 대해서도 전액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신중한 관리자 원칙(주의의무)을 위반한 수탁자를 보호하거나 책임을 경감하는 수탁계약이 이뤄진 경우도 모두 무효 처리된다.

만약 수탁자가 수탁자 책임을 위반하는 경우 노동부장관, 연금급부보증공사 등 정책당국뿐 아니라 근로자나 수급권을 가진 퇴직자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보험연구원은 “개인의 경우 수탁자 책임 위반 행위를 감시 감독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으로 연금수급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국내 보험회사도 퇴직연금시장에서 상품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기금형 제도 도입과 연계된 수탁자배상책임보험 상품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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