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은 새로운 단계로의 이행을 위한 통과의례

경계 넘어서지 못하면 원하는 변화·혁신 불가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목욕은 변화와 혁신의 기본전제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목욕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우리네 할머니들은 목욕재계를 한 뒤 정화수 한 그릇을 떠 올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했다. 기제사를 지낼라치면 집안의 남자들은 먼저 목욕을 하고 제상 채비에 나서야했다. 이밖에도 첫 찻잎 채취, 첫 곡물 수확 등 농업 및 어업 생산의 첫발은 반드시 목욕에서 시작되었다.

목욕은 악의 세계를 정화하거나 순화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물에 잠기는 행위는 존재 이전의 상태, 즉 원초적 상태로의 회귀를 뜻한다. 또한 한편으로는 전멸과 죽음을,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재생과 소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세례 의식은 물의 상징적 의미를 극대화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때는 죽음을, 그리고 물에서 나올 때는 새로운 인간으로의 재생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로 몸을 씻는 행위는 경계를 가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립되는 세계가 맞닿는 경계의 선에서 우리는 목욕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의 이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목욕은 변화와 혁신의 기본조건이 되는 것이다.

# 빅베스와 HN농협
NH농협금융지주 김용환 회장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빅베스(big bath)를 언급했다.

빅베스는 말 그대로 목욕을 해서 몸의 때를 씻어낸다는 뜻으로, 금융에서는 과거의 부실요소를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해 손실과 이익 규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의미로 사용된다.

김 회장이 빅베스를 언급한 이유는 그의 말대로 “취약산업 부실로 대손충당금이 늘어났고 순이익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최저비율로 충당금을 적립하고 있으나 한 번에 빅베스를 해야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그의 경영관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NH농협은 조선업과 해운업 등 취약 산업의 부실채권으로 인해 2,3분기 순이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을 시중은행 평균인 140%대까지 끌어올리려면 NH농협은행의 경우 당장 2조5000억원이 필요하다. 또한 관련 재원의 조달 및 추진방향에서 어느 것도 결정한 바도 없다.

이와 함께 빅베스와 관련, 농협중앙회 이사회의 동의 여부 및 관련 주체 간의 이견 등 넘어야 할 벽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여러 난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은 NH농협의 실질적 성장을 위해선 반드시 빅베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성장통이라는 것이다.

# 빅베스는 통과의례
앞서 말했듯 목욕은 새로운 단계로의 이행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통과의례다.

NH농협이 처한 현실은 여타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하고 힘든 국면이다. 안개 가득 낀 들판에서 조선과 해운업이 먼저 그 부실의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체 부실의 규모와 향후 전개 방향이 모두 드러날 때까지의 시간은 모든 금융회사에게 힘든 기다림의 시간이 될 것이다.

엄혹하게 말하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시간이자 공간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떤 회사도 빅베스는 가장 싫어할 전략이다. 이유는 모든 주체들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뎌야할 시간이 얼마큼일지 예측할 수 없을 땐 더욱 싫어지는 것이 이런 종류의 일이다.

하지만 싫어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건전하고 건강한 조직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일이 또 이런 종류의 일이다.

문화인류학자 반 게넵은 통과의례를 3단계로 나눠 설명하는데 그 중 첫 단계가 단절(혹은 분리)의 단계이다.

과거의 것을 버려야, 그리고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로운 생각이 깃들 공간이 생긴다. 과거의 관념과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면 새로운 생각과 기법은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단절, 분리는 변화와 혁신을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할 조치인 것이다.

김용환 회장은 NH농협의 현재를 이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솔직한 그의 리더십이 어떻게 빛을 발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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