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매년 0.5세 내외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 75.5세에서 2014년에 82.4세까지 증가했으며 60세를 은퇴연령으로 가정하면 은퇴 후 생존 기간은 약 40% 정도 증가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평균소비성향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이러한 기대수명이 급속하게 증가한 결과에 기인한다.

◆ 저축률 증가 결국 소비 증가로 전환될 것

기대수명의 증가는 노후에 필요한 소요 자금이 커짐을 의미한다. 노후를 위해 전 연령에서 소비성향을 낮추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고령층일수록 기대수명 증가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평균소비성향의 하락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기대수명이 80세에서 81세로 1세 증가하면 50세인 사람의 생존기간은 3% 정도 증가하는 반면, 70세인 사람은 생존기간이 11%나 증가해 주어진 소득 내에서 노후를 대비하려면 고령층일수록 소비를 더 많이 줄일 수 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은 기대수명 증가가 저축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를 반영한 생애주기 및 중첩세대 모형으로 모의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고령층의 노동환경이 개선될 경우 기대수명 증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단기적으로 기대수명 증가에 기인하는 평균소비성향 하락은 경제주체의 소득 대비 소비감소를 의미해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은퇴 이전 노동공급에 대한 유인이 증가하고 저축률 상승에 따른 자본축적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제고시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이 2000년 이후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저축률은 3.5%, 경제성장률은 0.4% 상승했다(2015년 기준).

모의실험에서 특정 시점에 기대수명이 0.5세 증가하는 충격을 주었을 때 경제주체들은 충격이 발생한 시점에 저축을 증가시켜 기대수명 변화가 없는 시나리오에 비해 저축률이 0.3% 상승했다.

이러한 저축의 증가는 소비를 감소시킬 수 있지만 은퇴 이전의 경제주체들이 노동시장에 장기적으로 머물물며 소비의 일부를 보전해 저축의 증가폭이 소비의 감소폭 보다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저축률 상승으로 더 많은 양의 자본이 축적되고 은퇴이전 경제주체들의 노동공급이 늘어나 자연스럽게 높아진 경제성장률에 따라 소비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시장 개선되지 않으면 성장도 멈춰

저축률의 상승은 자본축적으로 이어지고 노동의 한계생산성이 제고되면서 노동공급이 확대되면 궁극적으로는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와 같은 결과는 기대수명이 증가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둔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생산가능 인구가 정점에 이르고 총요소 생산성의 증가세가 둔화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대수명 증가는 잠재성장률 하락을 완충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공급이 유연하게 반응하지 못하거나 저축률 상승이 투자 확대로 연결되지 못할 경우 이러한 장기적인 효과를 크게 기대하긴 힘들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 권규호 연구원은 국내 소비활성화를 위한 대책은 기대수명 증가라는 관점에서 구조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저축 증가가 국내 투자 확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규제합리화와 기업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동시에 수반돼야 한다.

국내 노동시장에서 고령노동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0년 약 59%였던 퇴직연령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2014년 66.2%까지 증가했다. 가장 고령화된 일본의 경우 2013년 65세 이상 취업자 비중이 전체 취업자의 10%를 넘어섰으며 한국도 이 같은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졸 이상의 고학력 고령노동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60세 이상 근로자 중 대졸이상은 2009년 약 5만명에 불과했지만 2014년 약 10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졸 이상의 기본적인 학력과 숙련 기술이 결합된 고령노동자가 노동시장에 대거 진입할 경우 이들의 노동시장 내 경쟁력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고령자 친화적 업무방식으로 혁신 요구돼

고령자 증가에 따른 사회분위기의 변화는 업무방식에도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된 한국은 노동시간을 감소하는 추세가 고령사회 진입과 맞물려 점차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조업 등 생산현장에서는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직접적으로 감소하는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자동차, 철강산업 등 제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던 2조 2교대 교대조 생산방식은 최근 주간연속 2교대제로 전환되고 있다.

서비스업은 은행 콜센터에서 고령자의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조정해주는 등 과거 정형화된 근무 형태에서 벗어나 고령자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근무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또 같은 연령대의 소비자를 응대할 수 있도록 고령자 업무를 전환하는 유연시간 근무제로 고령친화적인 기업문화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부 또한 정년연장 등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적극적인 고령화 정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고령자 지원보다는 고령자를 노동시장에 장기간 머물게 하는 ‘적극적 고령화(Active Ageing)'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국의 고령자 정책 동향을 살펴보면 독일과 영국은 근로자 소득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일본은 기업지원, 핀란드는 나이차별 금지와 같은 기업문화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표 참조>.

권규호 연구원은 “은퇴 이전의 경제주체들이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지 못하면 경제성장률의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날 수 있다”며 “또 저축률 상승이 국내 투자가 아닌 해외저축의 형태로 나타날 경우 자본축적에 의한 경제성장률 제고도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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