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으로 보는 ‘역사’ <1>

 
문명과 대제국, 인식의 한계점 드러내며 쇠락
지식과 사실보다 신념으로 해법 찾아 나서기도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수천 년 전 인류는 강을 중심으로 문명을 일궜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에서 최초의 문명이 등장한데 이어 나일과 인더스, 그리고 황하 등에서 인류는 각 지역의 특징을 갖는 문명을 건설했다.

그리고 작게는 지역의 주도권으로부터 크게는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며 성장했던 수많은 제국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고대 그리스 그리고 로마는 서양문화의 원류라 불릴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발전과 쇠퇴를 똑같이 경험했다.

물론 그 사이에 마케도니아에서 시작된 알렉산드로스의 제국, 그보다 수 세기 앞서 근동 아시아에서 대제국을 건설했던 키루스의 페르시아 제국도 지구에 이름을 남긴 대제국에 속한다.

동아시아에서도 제국은 수천 년 중 짧은 몇 차례의 시기를 제외하고 항시 등장했으며 이들이 아시아의 질서를 좌우하며 패권의 핵심임을 자임했다.

특히 아시아의 초원에서 시작된 징기스칸의 몽골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떨치며 동서무역 및 문화교류의 엔진 역할을 도맡았다. 이 같은 현상은 구대륙에서만 독점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도 잉카, 마야, 아즈텍 등 다양한 문명이 존재했으며, 구대륙에 버금갈 규모의 사람들이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자신들의 발전경로를 걸어갔다.

그런데 고대문명은 물론 이후의 문명들은 반드시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쳤다. 한번 성장했으면 반드시 쇠멸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대제국을 건설했던 수많은 영웅들도 잠시 반짝이다 별똥별이 되어 사라지기 일쑤였다. 어쩌면 명멸이 자연의 순리인양 이를 거부한 문명도 제국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성장과 쇠퇴의 순환고리를 반복해서 걷고 있는 것인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부터 서양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계속 기록되고 있으며, 사마천의 <사기> 이전부터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은 무수히 저술되었다. 그러나 왜 인간은 자신의 기록을 통해 잘못을 개선하거나 수정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것일까?

고대 문명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문명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특정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두 가지 전조가 경고등처럼 항시 켜졌다고 한다. 첫 번째는 정체현상이다. 하나의 문명이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없게 되면 바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그동안 문명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더 이상 문제 해결을 위한 기준이 되어주지 못하는, 그래서 문명 구성원들이 더 이상 ‘사고’할 수 없는 ‘인식의 한계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 정체는 과거의 문명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20세기 우리의 역사 그리고 기업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혁신하지 않았거나 변화를 준비하지 않은 국가와 기업은 항시 새로운 환경(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축적된 지식과 확인된 사실을 신념이 대신하는 현상이다. 현재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된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기존의 법칙과 관습으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하지만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관점에서 정리되거나 풀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매번 확인한다.

이처럼 문명과 제국은 필연적으로 정체를 경험했고 그리고 과거 신념의 노예가 되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사라져갔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소는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환경적 요인, 인구과잉, 전쟁, 질병, 정치 실패, 에너지 및 식량 부족 등의 직접적 원인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인식의 한계점에 달한 문명과 제국은 붕괴의 직접적 원인을 분석할 상상력의 고갈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는 관용을 갖추지 못하고 패권을 쫓는 중심 도시국가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정화 능력을 상실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로마제국은 관용적인 ‘로마시민’ 정책을 유지 하지 못하고 이미 기독교화된 게르만을 끊임없이 차별하면서 인식의 한계에 도달했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상상력으로 한계에 달한 문제의 해법을 찾았다면 다른 형태의 역사가 전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과거의 실수를 되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마취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구세력은 신세력에게 흥망성쇠의 지혜를 전달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면 결국 새로운 상상력을 가진 다른 세력에게 그 지혜는 전달되고 만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는 쓰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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