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으로 만나는 ‘영웅’ <3>

 
아킬레우스의 성숙은 새로운 가치의 발견 의미
다양한 가치 지닌 ‘여우’ 오늘날 필요한 인재상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한결같이 헤라클레스처럼 분열된 영혼을 가진 자들이다.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들은 그 힘을 쓰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괴력을 발휘하고 난 뒤에 발생하는 문제는 그들에겐 별로 관계가 없다.

아킬레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의 그리스 영웅은 물론 헥토르처럼 학습된 용기로 무장된 트로이의 영웅까지 ‘앞으로 나가고자’하는 통제 불능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를 테면 이들은 모두 영웅적 에너지를 활활 불태우면서 “올 테면 오라”라고 외치는 전사와 같은 모습이다.

이것이 2800년 전 당시 그리스가 원하던 영웅의 전형이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소아시아지역의 절대 권력이 만들어낸 대제국, 그리고 펠로폰네소스와 그리스 지역에 산재해 있던 폴리스들. 모두가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국인 상황에서 폴리스 공동체의 안위를 지켜낼 수 있는 사람들은 앞뒤를 재기보다 위기에 맞서 용기와 용맹을 보여줄 영웅들이었다.

일반적인 그리스인들은 폴리스의 시민들에게서 제우스의 모습을 찾고자 했으며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 등의 전설 같은 영웅들이 보여준 덕목을 발휘해주길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의 영웅에서 긍정성만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러한 영웅들에게서 부정성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정치학자 로렌스 프리드먼은 <전략의 역사>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등의 영웅들이 직면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상대를 격퇴하는 모습을 “지능이 동반되지 않는 무력은 위험하다는 경고”라고 해석했다. 또한 작가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에서 역사가 낸시 셔먼이 군인정신에 빗대 아킬레우스를 비판한 대목을 다음처럼 재인용하고 있다. “비록 분노가 무기와 갑옷만큼이나 전쟁의 중요한 일부이기는 하지만 오직 통제될 때에만 군사적 가치를 지닌다.”

어찌됐든 아킬레우스는 당시 영웅의 본성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었다. 또한 “지독하리만치 혼자”였던 사람이었고 파괴적이며 무정부주의적인 사람이었다.(앙드레 보나르의 평가)

# 성숙한 아킬레우스
이런 아킬레우스가 변화하고 성숙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현재에 충실했던 영웅이, 전리품을 두고 아가멤논과 갈등을 벌였던 아킬레우스가, 친구가 죽고서야 비로소 아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을 향하던 분노를 적군인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게로 돌릴 수 있었던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와의 전투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헥토르와의 전투에서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았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전장을 헤집고 다닌다. 이 모습을 트로이 성에서 바라본 아버지 프리아모스와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 그리고 헥토르와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병사들은 아연실색한다. 그리스에서 죽은 자의 시신은 반듯이 장례를 치러져야했다. 그런데 신에 대한 오만처럼 비춰질 행위를 거침없이 아킬레우스가 보여줬던 것이다.

결국 프리아모스는 적장 아킬레우스의 천막을 엄청난 선물을 가지고 밤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헥토르의 시신을 달라고. 뜨거운 눈물을 보이며 아킬레우스의 거울뉴런을 자극시킨 그는 끝내 아킬레우스를 공감시킨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노인장을 위로한다. 아들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프리아모스의 감정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 전쟁에 참여하면 영웅이 될지는 몰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신탁이 떠올랐을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느낄 슬픔을 그렸던 것이다. 그리고 헥토르의 시신을 넘기고 장례를 위한 휴전을 선언한다.

<일리아스>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24권에 나오는 이 내용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그리스의 청소년들에 전하고 싶어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의 이 서사시를 애송했다고 한다. <그리스인 이야기>의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이 장면이 감격스러운 이유는 도무지 아킬레우스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21세기 성숙한 아킬레우스의 미덕은 무엇일까?

21세기는 많은 가치가 통시적이며 통공간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이다. 하나의 핵심가치로 읽어낼 수 없는 시대. 그래서 다양한 가치와 시각으로 대응하며 찾아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고슴도치처럼 하나의 가치만 추구하면 돌파구가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여우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아킬레우스답지 않은 모습의 본질은 양립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 ‘강함’과 ‘부드러움 내지 굽힘’의 공존이다. 2800년 전의 영웅에서 찾았던 이 가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오히려 더 뼈저리게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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