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국내 가계의 자산이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고령화가 맞물리며 국내 가계의 금융자산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금융자산 중에서도 안전자산의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자산에서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금융자산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던 실물자산 비율이 금융위기 이후 점진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부동산에 몰린 돈… 보험·연금으로 이동
한국은행의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비금융자산 비중은 2008년 말 70.5%로 정점에 달한 후 감소세를 보이며 지난해 말 63.1%까지 하락했다. 반면 금융자산 비중은 2008년 말에 29.5%를 기록해 저점에 이른 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지난해 말 36.9%에 이르렀다.

LG경제연구원은 2008년을 기점으로 비금융자산과 금융자산 비중의 변화에 반전이 생긴 이유에 대해 2008년 이후의 자산 증가율 변화를 꼽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의 비금융자산 증가율이 크게 낮아진 것은 대표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폭이 이전에 비해 낮아진데다 부동산의 순매입이 줄어든 데 기인한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발생하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부동산자산 명목보유손익은 금융위기 전까지 빠르게 늘어났지만 금융위기 직후 크게 줄어들었다. 이후 명목보유손익이 정체되다 부동산경기의 회복에 힘입어 2013년 이후 소폭의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가계의 비금융자산 순취득은 2006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고 이후에도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금융자산 운용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했다.

가계의 금융자산 증가는 주로 주식, 채권 등 투자자산보다는 현금 및 예금, 보험 및 연금 등의 안전자산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금융자산 가운데 안전자산 비중은 2000년대 초에 하락세를 보이며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65.2%로 저점을 기록한 후 2015년에 74.2%까지 상승했다. 반면 투자자산의 비중은 금융위기 직전 2007년까지 빠르게 증가해 34.1%에서 정점을 보인 후 2015년 25%까지 낮아졌다.

이러한 비중 변화는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투자자산의 증가세가 크게 낮아졌지만 안전자산은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증시가 회복됐던 2009년에서 2011년 상반기 기간을 제외하고는 안전자산 증가율이 투자자산 증가율을 모두 웃돌았다.

투자자산의 증가세가 낮아진 것은 주가약세와 관련이 크다. 금융위기 이후 2011년까지 주가가 위기 이전 수준에 가깝게 회복됐지만 그 후 정체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주가회복으로 투자자산 증가율이 다소 높아졌을 뿐이다. 이러한 주가의 움직임을 반영해 금융자산 운용에 있어서도 위기 이후 위험자산인 투자자산은 감소한 반면 안전자산은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세부 자산별 비중 변화를 살펴보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대표적인 투자자산인 주식 및 간접투자는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31.1%까지 높아졌다가 2015년 19.4%로 낮아졌다. 반면 안정적인 자산인 현금 및 예금, 보험, 연금의 비중은 금융위기 이후 높아졌다. 특히 보험과 연금의 비중은 같은 기간 22.7%에서 31.1%까지 높아지며 금융자산 비중의 상승을 견인했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산의 증가가 안전자산 위주로 이뤄진 데는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자산 가운데 보험과 연금이 크게 늘어난 것은 노후대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을 반영한다. 보험 및 연금만큼은 아니지만 현금 및 예금 비중이 소폭 높아진 것도 안전자산으로서 유동성과 안정성에 대한 선호가 위기 이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은퇴 늦어지며 60대 자산규모 50대 추월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가계부문의 금융자산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와 달리 가구주 연령별로는 자산구성의 변화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해보면 국민대차대조표와 마찬가지로 가계 전체적으로는 금융자산 비중이 2010년 21.3%(가구별통합자료 1만가구 대상)에서 2015년 26.5%(금융 및 복지부문 가구통합공통부문 약 2만가구 대상)로 증가했다.

연령별로 보면 30대 후반과 70대 이상 가구주 가구를 제외한 전 연령대 가구의 금융자산 비중이 증가했다.
30대 후반(35~39세) 가구주 가구에서는 금융자산 비중이 2012년 34.9%에서 2015년 34%로 소폭 감소했으며 70대 이상 가구주의 가구에서도 15.1%에서 14.5%로 금융자산 비중이 감소했다.

반면 50대 가구주 가구는 2012년 23.4%에서 2015년 26.6%로, 60대 가구주 가구는 17.2%에서 19.9%로 금융자산 비중이 늘어났다. 가구주 연령기준 30대 후반 가구는 실물자산이 가구당 평균 1240만원 증가한 반면 금융자산 증가는 312만원에 불과했다. 50대는 거주주택 이외 부동산을 중심으로 실물자산이 가구당 평균 1763만원 감소한 반면 금융자산은 평균 1205만원 증가해 금융자산 비중이 높아졌다.

특히 60대에서는 가구당 평균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이 각각 4330만원, 2377만원이나 늘어났다. 금융자산 증가율이 연평균 10.9%로 실물자산 증가율 4.4%보다 높아 금융자산 비중이 크게 상승했다.

60대 이상 노령층의 순자산이 늘어난 것은 60대 미만 가구주의 순자산이 큰 변화가 없거나 줄은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60대 가구주 가구의 자산이 크게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은퇴시기가 늦춰지고 60대에도 일하고 있는 경우가 늘면서 60대 가구주 가구의 가처분소득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60대 가구주 가구의 2012년 소득은 전가구 평균소득 대비 77%였지만 2015년에는 87%로 높아졌다. 60대 가구의 소득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성인 자녀의 결혼 등을 통한 독립이 지연되면서 자녀의 소득이 가계소득으로 합산되고 있는 점도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60대 가구주 가구가 소득 증가와 함께 노후대비를 위해 저축을 크게 늘린 것도 자산 증가 요인으로 분석된다. 결과적으로 자산과 순자산의 정점이 2012년에는 50대였지만 2015년에는 60대로 늦춰졌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인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후 2017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과 대만에서는 고령화와 더불어 보험 및 연금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LG경제연구원 박성준 연구원은 “가계의 자산 구성은 앞으로도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및 주택시장 여건 등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우리나라 가계의 보험 및 연금 비중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국내외에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어 당분간 연금 등을 중심으로 금융자산 비중이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