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으로 만나는 ‘영웅’ <5>

 
용기, 고대 사회 유지시켜준 유일한 힘
타고난 용기 - 아킬레우스, 훈련된 용기 - 헥토르
묵직한 용기 - 아이아스, 날렵한 용기 - 디오메데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동양의 씨족·부족 사회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같은 공동체들은 통과의례처럼 전쟁을 거치면서 성장하거나 소멸했다. 공동체 간에 발생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전쟁이었던 시절, 그 사회를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용기’였다.

그래서 <그리스인 이야기>의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용기가 인류를 구했다”고 말한다.

2800년 전의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일리아스>에도 다양한 용기가 등장한다. 그 용기들이 그리스 연합군을 구하기도 하고, 트로이를 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용기의 백화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젊은이들이 배울 수 있는 용기의 전형들이 다채롭기만 하다.

우선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용기. 호메로스는 그를 수식할 때마다 ‘발이 빠른’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그의 민첩성은 당대 그 어떤 전사도 따라올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킬레우스는 영웅들마저 맞설 수 없는 무적의 타고난 용기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가 전투에 참여하면 그리스 연합군은 반드시 승리했다. 타고난 무공이 뛰어났기에 아가멤논과의 갈등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용기의 주인공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트로이의 첫째 왕자 헥토르의 용기다.

아킬레우스는 천성적으로 용감하지만 헥토르는 배워서 용감해진 사람이다. 훈련을 통해 용기를 배웠으며, 공동체를 위해 용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두려움을 알고 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한 용기라는 점에서 소크라테스도 그를 극찬한다. 물론 호메로스도 그런 점 때문에 헥토르를 연민했고, 그의 용기를 그리스 젊은이들이 배워주길 바랬던 것이다. 이밖에 그리스 연합군 중 아이아스와 디오메데스의 용기를 거론할 수 있다. 둘 다 아킬레우스만큼은 아니었지만 헥토르와 버금갈 정도의 용맹을 떨친 영웅들이다.

트로이전쟁에서 위기에 몰린 전우들을 가장 많이 구출한 사람이 아이아스다. <그리스인 이야기>의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그의 용기를 묵직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고집스럽기까지 하다고 표현한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그를 “갈비뼈 몇 대가 부서지든 말든” 달려드는 당나귀이자 몽둥이질에도 꿈쩍하지 않는 아이아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보나르는 절망을 모르는 콘크리트 같은 인물이라고 그를 설명한다. 그것이 힘이 되어서일까? 그는 트로이 제1의 전사 헥토르와의 전투에서 무승부를 기록한다.

아킬레우스가 파업하면서 전장의 주도권은 헥토르에게 넘어간다. 이런 위기의 국면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지켜준 영웅은 디오메데스다. 그래서 앙드레 보나르는 그를 언제라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원병 같다고 말한다.

5분대기조처럼 전장을 휘저을 수 있는 그의 용기를 그래서 날렵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적진 깊숙이 혼자 들어가 흔들림 없이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는 전사들 중 가장 용기 있는 자로 묘사되었다. 이런 모습만 보면 아킬레우스를 빼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에게서는 아킬레우스의 ‘욱’하는 성질이 없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친구의 파업과 무참히 죽어가는 그리스 병사들의 모습을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빌려 전투에 참여하는 파트로클로스의 용기가 있으며,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왕의 권위까지 무시하고 적장을 찾아나서는 프리아모스의 용기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용기의 모습들이 다양한 인물들에 녹아 있다.

이 같은 호메로스의 전통은 후대의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에게도 이어진다. 그 또한 ‘용기’를 노래하는 시인이다. 다만 그는 영웅을 믿지 않았다. 영웅만으로는 공동체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그는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고 맞서는 시민들을 신뢰했다. 그래서 그는 시민들의 ‘용기’를 찬미하는 시들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남긴 말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 하나 있다.

“여우는 할 줄 아는 게 많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하나밖에 모른다. 그래도 그 하나 덕에 명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아르킬로코스가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고슴도치처럼 ‘하나’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는 ‘용기’였을 것이다. 그 근거는 아르킬로코스가 기원전 640년 타소스와 낙소스 간의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점이다. ‘용기’가 그의 덕목이 아니었다면 그의 마지막은 전쟁터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르킬로코스처럼 ‘용기’를 그의 대명사라고 말할 수 있는 폴리스의 시민이 또 한 사람 있다. <그 사람, 소크라테스>의 저자 폴 존슨은 “소크라테스가 가진 특별한 덕목을 하나만 꼽자면 그것은 용기”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전장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사형을 언도받고 이승에서 몇 시간 앞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는 설명한다.

폴 존슨은 그런 소크라테스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용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타고난 아킬레우스의 용기보다도, 그리고 훈련으로 익힌 헥토르의 용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용기를 말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사회를 지탱해 준 힘은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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