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 감사 위해 감사보수 3~4배 지급한 현대카드·캐피탈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금융회사의 생명은 ‘신뢰’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회사의 존립여건 자체가 부정된다.

그렇다고 ‘신뢰’가 꼭 금융회사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 기업들도 모두 고객과 주주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영속성을 갖는 기업이 될 수 있다.

기업이 ‘신뢰’를 높이는 행위는 투명한 회계 관리를 통해 정확한 실적을 공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 기본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은 다르게 나타난다. 제대로 기업의 실적을 공개하면 주주와 종업원들은 정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부정확한 정보를 공개하면 기업의 구성원 전체가 손실을 입게 된다.

후자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대우조선해양 사건이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3년간 총 5조원 가량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이 기간 동안 이 회사의 주식을 거래한 사람들은 이 기업에게 모두 속은 것이 되며, 역시 마찬가지로 이 기간 동안에 발생한 여신이 있다면, 해당 은행 및 금융회사들도 왜곡된 정보에 속았다고 말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부실규모가 더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회계 관련 행보가 업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정태영 부회장이 CEO로 있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각각 딜로이트안진과 삼정KPMG에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정 부회장이 경영하는 두 기업은 지난 2014년 각각의 회계법인에게 3~4배의 회계감사 보수를 지불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기사화되면서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정 부회장의 경영 마인드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딜로이트안진에게 2억2000만원이던 보수를 9억원으로, 현대캐피탈은 삼정KPMG에게 3억300만원을 9억1800만원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건은 단 하나, 감사를 제대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감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두 회계법인에서 총감사시간을 대폭 늘리는 형태로 나타났다. 지난해 딜로이트안진은 현대카드에 5배가 늘어난 9466시간을, 삼정KPMG는 현대캐피탈에 2.5배 늘린 8990시간을 투입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정태영 부회장은 그의 페이스북에 지난 24일 “제대로 회계감사를 받겠다고 해도 뉴스가 되는 세상”이라며 글을 올렸다. 의도된 기사였는지의 문제를 떠나 커뮤니케이션의 달인답게 그는 이 페이스북 글에서 현재 우리 기업들의 회계감사 문화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선 부실 회계감사를 하면 회계법인이 버틸 수 없는 미국의 감사시장을 말하면서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계법인 지정제와 수수료 가이드라인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미국의 경우 이 같은 제도가 없지만 회계시장의 엄격성 때문에 제대로 된 감사가 이뤄지고 있고 따라서 적절한 보수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계시장의 엄격성이 유지되지 않는 가운데, 이 두 제도를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정 부회장은 말한다. 먼저 현재의 상황이라면 수수료 가이드라인은 의미가 있지만 회계법인 지정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지정을 한다고 해서 위탁기업과 수탁기업 간의 유착의 고리가 끊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 그리고 회계법인의 특화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시간만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회계 감사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면서 다만 회계법인들이 특정영역, 즉 금융이면 금융, IT면 IT, 조선과 중공업이면 그쪽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경험을 누적하는 것이 바람직한 특화발전의 경로라고 지적했다.

어찌됐든 회계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위탁기업이 보수를 몇 배씩 늘려가는 경우는 최초인 것 같다. 현대카드의 이런 노력은 결국 자신의 신뢰성을 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며, 그것은 결국 고객과 주주들의 이익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 부회장이 얻고자 하는 현대카드와 캐피탈의 브랜드 이미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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