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으로 만나는 '영웅'<2>

   
 

트로이전쟁 10년 이끌 리더십 없었던 인간
권위에만 의존한 통치로 군 조직력만 와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을 다룬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외에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희곡 《아이아스》와 그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 등 다양한 작품에 등장한다.

그만큼 비극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비극성은 트로이 전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동생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에 납치당하자 형에게 출병을 요구한다. 아가멤논의 미케네가 당시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했기 때문에 그리스 연합군의 좌장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넬라오스의 생각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정확했던 것 같다. 트로이를 향한 전함은 총 1100여척. 전쟁을 촉발시킨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가 내놓은 60척보다 많은 100척의 배를 내놓은 것을 보면 확실히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전쟁을 치러 나가는 모습을 보면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에 비해 의사결정 능력이 확실히 떨어지며, 결정의 기준 또한 공적 측면보다는 사적 기준에 많이 의존한다. 따라서 결과에 대한 불만은 당연하게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의 그런 행동은 결국 문학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선 《일리아스》에서의 그의 모습은 총지휘관으로서 보여서는 안 되는 행동 두 가지를 한다.

하나가 잘 알고 있는 아킬레우스가 전리품으로 획득한 브리세이스를 빼앗은 행동이다. 당시 전리품의 분배는 사적욕망의 충족을 넘어서는 전투에서 보여준 전사의 행동에 대한 공적인 인정을 의미했다. 지휘관으로서 조직 구성원 전체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공정성을 기해야 할 사람이 그 원칙을 깨고 말았으니 그리스 연합군의 조직력은 그 때부터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빼앗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주겠다고 아킬레우스 앞에서 말했으니 그의 분노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조직력이 와해된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에게 몰리게 된다. 이 같은 열세는 아킬레우스가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의 첫째 왕자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이어진다. 분노의 대상이 바뀌면서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참여하자 다시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여서는 안 될 두 번째 그의 실수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군에게 계속 밀리자 아가멤논은 일선 지휘관들에게 야반도주를 하자고 말한 행동이다. 오디세우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아가멤논의 경솔함을 꾸짖듯 말하면서 상황은 정리됐지만, 그의 리더십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10년의 장기 원정을 이끈 총사령관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후퇴를 말하는 것 자체가 리더십의 기본이 안 갖춰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오디세우스의 지적처럼 원정군이 전함을 뭍에서 바다로 끌어내 후퇴를 한다면 당연히 그리스 연합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것이며, 이를 지켜보는 트로이군에게 오히려 공격을 당해 큰 재앙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 같은 그의 행동보다 더 큰 문제는 10년의 트로이 전쟁을 원정군의 입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질질 끌었다는 점이다. 오디세우스의 지혜(트로이의 목마)가 있고서야 전쟁의 끝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은 총사령관으로서 전략적 무능함을 노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죽음을 다룬 《아가멤논》에서도 그의 전략적 무능함은 극에 달한다. 사건은 전말은 이렇다. 10년 전 트로이를 향하는 과정에서 그는 폭풍우를 잠재우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재물로 바친다. 전체 그리스 연합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킨 것이다.

이미 비극적 요소를 내포하고 전쟁을 치른 아가멤논은 트로이를 함락하고 돌아올 때 이에 대한 대응을 했어야 했으나 아무런 대책 없이 돌아와 그의 아내 크리타임네스트라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트로이 전쟁에 자신의 가족과 재산, 그리고 왕위까지 내놓고 올인 했지만, 보상은 그의 죽음이었다. 어쩌면 아가멤논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인간형일 것이다.

호메로스는 그의 무능함에 크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지만, 《일리아스》의 독자는 호메로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가멤논에 대한 그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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