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 은퇴연구소 김태우 연구위원

▲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김태우 연구위원.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곁에 머무는 자녀를 ‘이도 저도 아닌 세대’라는 뜻의 ‘트윅스터(Twixter)’라고 부른다. 캐나다에서는 직업을 구하러 이리저리 다니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에서 ‘부메랑 키즈’,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연금을 축낸다는 뜻의 ‘키퍼스(KIPPERS·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뜻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취업을 못한 20~30대를 ‘캥거루족’, 취업을 했더라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30~40대를 ‘신(新)캥거루족’이라고 칭한다. 마치 어미 캥거루의 주머니에서 보살핌을 받고 살아가는 것 같다고 해서 나온 신조어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의 교육, 결혼, 주거비용 등을 지원하면 자녀는 나이든 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였지만, 경제 사정이 악화되고 핵가족이 일반화가 된 지금은 오히려 나이든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를 역부양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대한민국 5060세대는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늙은 ‘염낭거미’ 닮아가는 5060세대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연령대별 경제적 행복의 장애물은 20대는 ‘일자리 부족’, 30대는 ‘주택’, 40대는 ‘자녀 양육과 교육’, 5060세대는 ‘노후 준비 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40대의 자녀를 위한 과도한 지출이 50~60대의 노후 준비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혹자는 대한민국 5060세대가 늙은 ‘염낭거미’를 닮아가고 있다고 한다. 독거미의 일종인 염낭거미는 먹을 것이 없으면 새끼를 위해 제 살까지 먹이로 주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5060세대는 은퇴와 동시에 수입은 끊겼지만, 여전히 부모에게만 의존하는 자녀세대 때문에 제대로 된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설문에 따르면 25세 이상 성인 자녀를 부양하고 있는 부모의 경우 지난 1년간 성인 자녀를 위해 월 평균 73만7000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그 중 월 50만원 이하를 쓴다는 응답자가 56.2%로 가장 많았고, 100만원 이하는 26.6%, 100만원 이상은 17.3% 순이었다. 위로는 부모 부양, 아래로는 자녀 부양으로 인해 자신의 노후 준비는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다.

◆다 키운 자식,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

보건복지부의 ‘전국 출산 및 가족보건·복지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식주, 교육, 용돈을 포함해 자녀 1명당 대학 졸업까지 드는 비용은 평균 약 3억896만원이다. 자녀가 태어나면 매월 약 100여만원이 부양비로 지출되는 셈이다. 다른 나라의 가구 연령별 소비 성향을 보면 40~50대 시기의 소득 증가와 지출 감소로 ‘U’자 형태가 나타나지만, 우리나라는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로 오히려 40~50대 시기의 지출이 가장 높은 ‘W’자 형태를 보이고 있다. 결국 40~50대에 자녀 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해 50~60대 이후 노후 준비 부족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성인이 된 자녀의 결혼 역시 부모에게는 큰 부담이다.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 결혼비용은 약 2억7420만원이었다. 주목할 만 한 점은 결혼비용의 60% 이상을 부모가 부담하는 경우가 33.5%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5060세대가 자녀 부양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60세대, 자녀의 결혼이 끝이 아니다

자녀의 결혼이 자녀 부양의 끝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모의 자녀 양육 기간을 묻는 질문에 ‘대학 졸업할 때까지’라고 응답한 비율이 49.6%로 가장 높았고, ‘결혼할 때까지’가 20.4%, ‘취업할 때까지’가 15.7%로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어린 손주를 둔 조부모의 상황은 어떨까. 영아 자녀를 둔 2030세대 부부의 경우 82.6%가 조부모의 육아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월 평균 보수는 50대 60만6000원, 60대 54만5000원, 70대 44만9000원, 80대 이상 20만원으로 나타나 5080세대를 통틀어 55만4000원에 그쳤다. 결혼할 때까지 자녀를 부양하다 자녀가 자식을 낳으면 손주를 보살피게 되는 상황, 대한민국 60대 노년의 삶은 노후 준비를 할 새 없이 평생 자녀와 손자녀의 뒷바라지로 채워지고 있다.

자신의 노후 준비를 위해 어려운 자녀들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 노후 준비는 어려운 숙제임이 틀림없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노후 준비를 시작해 자녀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도 대비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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