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5 19:10 (화)
[칼럼] ‘힘과 용기’의 영웅에서 ‘지혜’의 영웅으로
[칼럼] ‘힘과 용기’의 영웅에서 ‘지혜’의 영웅으로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6.09.11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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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으로 만나는 '영웅'<4>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달라진 영웅관 반영
호메로스, 시대가 필요한 핵심 이데올로기 담아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2800년 전 호메로스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관의 변화를 자신의 대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노래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일리아스>는 전쟁에서 벌이는 영웅들의 영웅담을 중심 소재로 잡았다면 <오디세이아>는 전쟁 이후의 험난한 귀향길에서 벌어지는 모험담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다.

문학작품은 당대의 주된 생각을 담고 있다. 시기와 공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애송하고 애독했다는 것은 해당 작품이 정치적으로 필요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거나 생명을 다한 기존의 질서 및 이데올로기를 대신해서 새로운 질서체계와 이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쏟았다는 것은 그 만큼 살아가는데 유용한 정보와 교훈을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예술은 정치, 경제, 문화적 필요성, 즉 지배계층의 요구에 따라 소비되는 경향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호메로스는 영웅담과 모험담 사이의 간극에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절묘하게 녹여 넣었다. 하지만 두 작품의 시각 차이는 매우 크다.

우선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과 매우 유사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들의 영웅성은 ‘힘과 용기’에서 비롯되는 무공에 있으며, 이는 2800년 전의 그리스 청소년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전쟁을 치러야 했던 그리스의 폴리스에선 전쟁에서 보여주는 영웅들의 다양한 용기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의 만남에서 보여주는 관용이 핵심주제이지만, 힘과 용기를 가지고 거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태도도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힘과 용기’를 근간으로 한 거칠고 남성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중함’이 <오디세이아> 전편을 흐르는 생존법의 핵심코드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답은 당대의 핵심 이데올로기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리아스>에도 오디세우스는 등장한다. 여기서도 그는 ‘힘과 용기’를 내세우기보다 지혜를 바탕으로 큰 생각을 일궈내는 전략가로 등장한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오디세우스를 추켜세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폴리스들의 영웅관과 지배이데올로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고향 이타카로의 귀향을 주제로 한 <오디세이아>는 바다사람들의 이야기다. 새로운 호기심으로 출발하는 모든 여정에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새로움을 경험하는 대신 수업료를 내야 하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소의 수업료를 지불하기 위해선 행동 이전에 행동의 결과를 생각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래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신중하다.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전의 영웅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중하지 않으면 에게해와 지중해에서 만나야 하는 각종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생각하는 사람, 지혜롭게 움직이는 영웅이 절실히 요구하게 된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10년 동안 귀향의 험로를 헤쳐 나가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바닷사람들의 모험담으로 치환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온전히 펼쳐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지혜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목마작전을 펼쳐 10년의 교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트로이 전쟁의 해결사가 된 장면이 빛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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