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으로 만나는 '영웅'<5>

   
 

유혹과 장애 극복하며 10년 세월 이겨낸 영웅
불확실성의 시대 이겨낼 덕목은 지혜와 인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그리스인이야기>의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그리스의 바다, 에게해를 고기잡이의 바다가 아니라 교통의 바다라고 말한다. 생계를 위해 정어리나 다랑어를 잡기도 했겠지만, 에게해 넘어 전체 지중해를 오가며 광활한 평원을 가득 메운 밀을 찾아 나섰고 하천과 산야에 묻혀 있는 금과 은 등의 광물을 찾아나서는 길이 바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던 만큼 그리스의 역사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 할 수가 없다. 특히 바다는 육지보다 더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모험은 불가피하다. 그런 점에서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마친 한 사람의 단순한 귀향기가 아니라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바다를 장악했는지를 알려주는 교과서 같은 서사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와 차원이 다른 그리스의 새로운 영웅이다. 힘과 용기만으로 세상을 좌우하던 시절은 지나고 지혜와 용기, 거기에 인내까지 필요한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지혜와 인내가 새로운 덕목으로 등장한 것일까. 이유는 명쾌하다. 바다는 힘과 용기만으로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형 자체를 모두 파악하기 힘들고 기후에 따른 항해 환경은 천차만별인 바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용기만으로는 불가능했으며, 새로운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열악한 환경과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바다가 중심 환경이 되면서 폴리스는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 영웅이 10년을 지루하게 끌어온 트로이전쟁을 마감시킨 오디세우스다. 그는 문제에 봉착하면 행동하기에 앞서 먼저 생각한다. 잔꾀 정도를 부리기 위해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해법을 찾기 위해 숙고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새로운 환경과의 싸움에서 물러섬이 없다. 바다와의 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은 그는 운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특성 탓에 앙드레 보나르는 그를 지혜로운 인간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여기서의 지혜는 세상에 대해 의미 없는 지식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닥칠 때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는 지혜를 말한다. 따라서 실용적이며 관념적이지 않다.

이와 함께 <오디세이아>에서 찾을 수 있는 그의 미덕은 귀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0년의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는 모습이다. 단순하게 힘과 용기만으로 승부를 내는 싸움도 있겠지만 자연과 환경에 대한 싸움은 인내하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오디세우스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하들과 함께 귀향길에 나서 수많은 유혹과 방해가 존재했지만, 그 때마다 그는 편법이나 지름길을 찾지 않고,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산 오디세우스는 신의 변덕과 방해를 겪어야 했고 악천후와 여인들의 유혹을 뿌리쳐야했고, 제멋대로인 동료들의 실수도 극복해야 했다. 물론 그의 간난신고 중에는 본인의 실수에 의한 것도 포함된다. 게다가 고생 끝에 도착한 이타카에선 그의 재산과 부인을 차지하려는 무뢰한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황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목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현대적 의미의 경영자와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목표를 위해 주어진 상황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대안을 정밀하게 수립하고 하나씩 실행한다.

따라서 그는 변화를 거부하려는 본성이 지배적인 세상과 싸워나가는, 그것도 체계적으로 현실적인 대안을 수립하면서 행동하는 현대적 의미의 리더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