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통주를 홍보하기 위해 인사동에 만들어진 전통주갤러리는 매월 그 달의 우리술을 지정해 시음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전통주갤러리 내부모습이며, 전통주 소믈리에가 관람객들에게 우리술을 설명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은 정성과 시간이 빚어내는 예술품이다. 정성의 크기와 깊이만큼, 그리고 발효와 숙성에 들어간 시간만큼 술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는 “신은 단지 물을 만들었을 뿐인데 우리 인간은 술을 만들어 마셨다”고 말하지만 사실 술의 시작은 인간의 발명이 아니라 자연에서의 인간의 발견이다. 발효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수만 년 전 자연이 스스로 빚어낸 알코올(포도 등의 과일, 꿀 등에 천연효모가 들어가 만들어진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원숭이와 코끼리를 보며 고대 인류는 술이라는 물질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을 흉내 내며 발효주를 만들어 즐겼으며, 이것이 인류 문명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술이 익는 과정에서 부글부글 끓는 모습, 또는 물을 마셨는데 속에서 불이 난다고 하여 수불, 그리고 수블, 수울, 술로의 변화 과정을 거친 우리 말 ‘술’은 화학 법칙을 몰랐던 고대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역사기록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등장하지만,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의 중국 측 사료를 보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다.

우리 민족이 처음 만든 술은 막걸리와 청주 등의 발효주였으며, 몽골 침략 이후 증류기술이 들어와 소주가 빚어지기 시작한다. 유럽의 나라들도 수천 년 전부터 발효된 술인 포도주와 맥주를 마셨고, 이슬람 과학의 도움을 받아 브랜디(코냑, 알마냑 등)와 위스키를 증류해 내기 시작했다.

이처럼 발효된 술과 증류된 술은 단순히 마시면 취하는 술로서의 목적에 그치지 않고 통치자는 자신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였으며, 문인들은 문예의 연장선에서, 상인들은 원활한 상거래를 위해 기꺼이 술을 마셨으니, 가히 문명의 토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술의 맛은 정성에 비례한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술은 장인들의 손에서 발전해왔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통치 이래 ‘우리술’의 흑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일본은 자국 예산을 들이지 않고 식민통치를 하기 위해 1905년 주세령을 반포한다. 제사와 잔치 등을 위해 집에서 담가 마시던 가양주를 금지시키고, 허가 받은 양주장에서만 술을 빚게 함으로써 양조장을 통해 손쉽게 세금을 걷고자 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술 문화는 장인의 손(종가집 며느리 등)을 떠나 일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친일 부일 했던 자본가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물론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 지주들도 이 속에 포함되었다.

당연하게도 이들의 목적은 ‘맛있는 술’이라기보다는 ‘이윤이 많이 나는 술’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관계는 해방공간에서도 그대로 연장돼, 일본이 두고 간 양조시설은 군정청에 줄을 대고 적산불하에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던 자본가들의 손에 상당수 넘어가게 된 것이다.

맥주는 술을 빚는 장인들의 공방에서 시작됐고, 포도주는 중세의 암흑기를 수도원이 지켜내면서 술 빚는 기술이 계승되었다. 이후 권력의 수많은 부침과정이 발생했지만 우리와 같은 흑역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술은 국가의 문화수준을 대변한다. 바이주(백주)가 중국을, 사케가 일본을, 포도주가 프랑스를, 스카치위스키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샤토’나 부르고뉴 지방의 ‘도멘’이 적산불하 실력으로 주인이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며, 독일 벨기에의 맥주공장이 장인의 손을 떠나 자본의 손으로 빚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우리 술이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현재 우리 술이 처한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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