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으로 술맛 채운 화양양조장 ‘풍정사계’
이한상 “우리술 ‘청주’ 주세법 때문에 홍길동 신세”

▲ <청주의 화양양조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우리 전통술 '풍정사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은 우리 술 청주이며, 여름은 소주로 발효를 중지시킨 과하주, 가을은 탁주, 그리고 겨울은 증류소주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은 장인의 자존심에서 빚어진다. 청주의 화양양조장은 사진관을 했던 이한상 대표가 술 공부 10년 만에 자신만의 술을 빚어 지난해부터 출시하고 있는 신흥 술도가이다.

첫 출시작은 청주. 그는 청주가 잘 빚어져야 나머지 우리 술이 다 잘 빚어진다고 말한다. 즉 우리 술의 완성은 청주에 있고, 청주가 잘 익으면 탁주는 자연스레 맛이 나고, 그 술을 증류한 소주도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 술 청주는 현재 홍길동과 같은 신세라고 그는 말한다. 이유에 대해 묻자 이 사장은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어 집을 나섰던 것처럼 우리 청주도 청주라고 부르지 못하고 약주라고 부른다”며 “일제 때 만든 주세법의 주류 분류를 따르면서 일본청주가 청주 자리에 들어와 있는데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 <지난 여름 이한상 대표가 직접 빚은 누룩은 그늘에서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건조되고 있다. 이 누룩은 녹두와 밀로 빚은 향온곡이다.>
해방 이후에 주세법을 개정하면서도 청주에 대한 정의를 변경시키지 않아 지금도 전통 누룩 대신 일본식 입국을 사용한 일본청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청주는 약주로 분류돼 제 이름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고려 때 송나라 사신으로 왔던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도 당시 우리 선조들이 마시던 술에 대한 설명에서 ‘탁주’와 ‘청주’가 분명히 명기돼 있고, 조선시대 흉년이 들어 국가에서 금주령을 내렸을 때 일부 사대부들이 병을 핑계로 약으로 술을 마시던 습관에서 ‘약주’라는 이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 술에 대한 명칭을 제대로 잡아서 약주를 청주로 정의하고 현재의 청주는 일본청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10년 술 공부에 술도가를 낸 지 1년밖에 안됐지만, 그의 우리 술에 대한 설명에 담긴 결기는 장인의 자존심으로 연결되는 듯싶다.

화양양조장의 술은 찹쌀 설기로 밑술을 한다. 그리고 누룩은 녹두 10%와 밀 90%로 만든 향온곡을 사용하는데, 술 빚는 법은 법주방문을 따른다고 한다. 전래되어 내려오는 주방문에 따라 청주를 빚어 100일 동안 숙성시키고, 소주는 증류 후 2년을 숙성시켜 출하하고 있다.

이처럼 밑술에 덧술을 하는 술들을 흔히 이양주라고 하고, 두 번의 덧술을 하면 삼양주가 된다.
덧술을 하게 되면 발효관리가 더욱 안정화되고 술맛도 한층 깊어져 고급스러운 맛을 내게 되는 장점이 있지만, 재료비가 늘고 숙성기간도 길어져 술값의 상승요인이 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청주와 탁주 그리고 소주에 이어 과하주까지 우리 술의 모든 장르를 제대로 빚기 위해선 재료와 숙성방법을 타협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양조장이 내놓는 술 중 일반인이 잘 모를만한 술은 과하주(過夏酒). 여름을 넘기는 술이라는 뜻이다. 여름은 술을 빚어 관리하기 힘든 계절이다.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 관계없지만 막걸리와 청주는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여름에 마시는 술을 빚어 3~4일이 지나면 증류 소주를 넣어 발효를 중지시켰다. 이렇게 되면 알코올 도수 20도 안팎의 술이 만들어져 알코올 발효를 하던 효모들의 활동이 중지되고, 술에 나쁜 영향을 주는 미생물의 활동도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스페인의 셰리와인과 포르투갈의 포트와인도 같은 원리를 이용해 빚은 포도주이며, 청주와 소주를 섞었기 때문에 우리식 폭탄주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화양양조장은 청주시의 물 좋은 땅 풍정리(楓井 단풍나무우물, 옆 마을이 초정약수가 나는 초정리)에서 술을 빚고 있다. 그래서 술 이름도 풍정사계. 풍정의 사계절을 담았다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청주는 화이트와인에 뒤지지 않고, 과하주는 소주인 듯 청주인 듯 그러면서 알코올감과 함께 깔끔한 단맛이 따라오고, 탁주는 누룩향이 오르면서 단 듯 신 듯 한 맛이 입에 침고이게 하고, 소주는 단단한 알코올감과 향기가 먼저 찾아오고 목 넘김 이후 살짝 단맛이 스치면서 고유의 증류주 다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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