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인사, 구심점 잃고 갈등 유발자 역할하게 돼
CEO의 최고 덕목 ‘기술 중심 시대 이끌 통찰과 혜안’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금융노조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다. 정부가 기어코 금융비전문가를 기업은행장으로 낙하산을 내릴 태세다. 구체적인 이름까지 등장했고 금융노조는 거명된 사람이 내정되면 강력 투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성과주의와 관련, 노조는 이미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다시 다수의 금융권 CEO를 포함한 임원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현재의 긴장관계는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기업은행 노조는 “권선주 은행장의 임기가 3개월도 채 안남은 상황에서 후임 은행장 후보로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거론되고 있다”며 노골적인 보은인사에 굴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고 권선주 은행장도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최고경영자 내부 경영승계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외부 영입과 내부 승진 중 무엇이 기업은행을 위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권 행장은 “아무래도 내부에서 승진하는 쪽이 업무파악을 하기 쉬울 것”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라면 낙하산 인사와 이를 막으려는 금융노조는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한 발의 양보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권력 후반기로 들어선 현 정부가 더 이상 반대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의사결정을 미루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CEO의 혜안이 금융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내부 승진을 통해 수장자리에 오른 권선주 행장의 경우 빠른 업무 파악만큼 조직력을 탄탄하게 다지면서 핀테크 등의 신금융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은행에 뿌리내리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기술 중심의 사회에 걸맞은 은행이라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미래 지향적인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현재 은행이 처한 상황은 4차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기술 주도권을 쥐느냐 놓치느냐에 따라 은행의 명운을 달리해야 할 만큼 백척간두에 서 있는 상황이다. 다만 그 낭떠러지가 눈에 보이지 않아, 그 만큼의 긴장감이 유지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외부에서, 그것도 정부의 입김에 의해 은행장이 선임될 경우 그 갈등의 폭과 깊이는 예측할 수 없으며, 게다가 그 영향이 은행의 미래에 어떻게 미칠지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CEO와 관련한 리스크가 발생하면 그 자체가 기업의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수없이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어찌됐든 낙하산 인사는 올 연말과 내년 초까지 금융권의 임기가 끝나는 CEO 및 임원이 있을 때마다 뜨겁게 금융권을 달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달궈지는 일이 산업의 혈관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권에게 바람직한 일인지, 대승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시점이다.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 정부는 교체된다. 기업도 그에 걸맞은 절차를 통해 CEO가 바뀐다. 은행을 포함한 기업의 미래는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구성원들의 뜻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백척간두의 위기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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