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 겸 대구은행장

위기 못 보면서, 현실 자각한다고 착각하기 일쑤
창립기념식서 100년 기업 위한 새 마음가짐 역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은행업의 위기라는 말은 이제 식상하다. 위기가 일상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은행업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위기의 본연의 모습이 눈에 잡히지 않아 긴장감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징후는 충분하다. 징후 속에 감춰진 본질을 찾지 못할 뿐. 전대미문의 초저금리시대.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인 국가들까지 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침체된 경제의 활로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모든 은행의 수장들이 은행의 생존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현재의 모습에 대한 혁신의 요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100년을 버틸 수 있는 기업이 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창립 49주년을 맞아 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침)을 화두로 꺼냈다. 과거와 다른 환경변화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위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뜻에서다.

춘추좌전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금융권 수장들이 자주 꺼내드는 사자성어다. 이유는 혁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혁신이 너무 어렵다보니 자주 꺼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것보다 어렵고 위험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좀 더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새로운 국가에 새로운 질서를 주도적으로 확립한다는 것이 성공하기 힘들고 위험한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옛 질서 아래서 편히 살던 모든 이를 적으로 돌리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자는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막상 그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현재까지 익숙했던 환경을 바꾸자고 나서면 꺼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변화를 수긍하면서도 진정한 변화를 거부하는 이중적 모습을 우리는 역사는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해피엔딩을 꿈꾼다. 이유는 다가와 있는 위기를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에게 유리하게 현재의 상황을 해석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까지 한다. 따라서 눈앞의 위험이나 쾌락을 보고는 있지만, 그 상황 너머에서 전개되는 본원적인 것은 보지 못하게 된다.

통찰력은 눈앞의 이익이나 위험을 감별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도 뒤에서 움직이는 힘을 파악하는 능력인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미래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고 앞일을 생각하며 계획을 수립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유는 자신의 욕망에 굴복해 원하는 미래상을 그리면서 계획을 수립하므로, 눈앞의 위험과 리스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소평가하기 일쑤이며, 정확한 현재의 상황과 자신(자신이 포함된 기업)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상상력에 의존해 계획을 짜기 다반수이다.

그래서 박 회장은 조직의 이런 특성을 고려해 제구포신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미에서 창립기념식에서 이 화두를 꺼내든 것이다. 10년 뒤 은행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지 않으면 1년도 생존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자는 측면에서, 어쩌면 절박한 심정에서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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