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내에 있는 참판댁 안채 전경. 이 공간에서 가양주인 연엽주를 빚는다.

진음식과 어울릴 신맛 도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돈벌이는 거부, 예의 있는 손님께만 참판댁서 판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용인 민속촌과 달리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민속마을은 전국에 몇 안 된다. 그중 아산의 외암리 민속마을(중요 민속자료 제236호)은 700년 전부터 마을을 이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종이 하사한 30칸짜리(처음에는 70칸) 참판댁이다.

이 집은 창덕궁의 낙선재와 같은 모양으로 지어졌다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누대에 걸쳐 내려오고 있는, 그래서 충청남도로부터 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받은 연엽주로 더 명성을 얻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대부분의 술들이 모두 양조업 면허를 얻어 사업으로 술을 빚고 있지만, 이 집을 지키고 있는 참판의 손자 이득선(72)씨는 선비의 꼿꼿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제사 또는 잔치 등에 쓰이는 술을 돈벌이를 위해 일반에 내다 팔고 싶지 않고, 다만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팔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을 빚는 양도 얼마 안 된다. 여름철의 경우 산도가 높아져 항아리 한독 정도만 빚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슬리퍼 신고 와서 술을 찾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은 사람들에겐 술을 팔지도 안는다고 한다.

술을 빚는 과정도 매우 까다롭다. 집안에 있는 아홉 대문을 다 걸어 잠그고, 목욕재계를 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집중하지 않고 술을 빚으면 똑같은 재료로 술을 담그더라도 술맛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참판댁의 연엽주는 보통의 가양주가 아니다. 150년 전 철종 임금시절, 내리 3년이 가뭄이 들어 굶주리는 사람이 많아지자, 요즘으로 치면 비서실장격인 비서감승을 지낸 5대조 이원집이 암행을 다녀온 뒤 임금의 수라상을 단출하게 줄일 것을 상소한다. 술과 떡도 올라가지 않은 수라상을 보면서 이원집의 마음도 착잡해졌던 모양이다. 그래서 도수가 낮아 음료에 가까운 술을 빚어 임금께 올렸다고 한다.

   
▲ 아산 외암리 참판댁에서 빚는 연엽주.

연엽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연잎을 사용한다. 예전에는 1000여 평 정도 연 농사를 별도로 지었는데, 이제는 술 빚는데 쓸 100포기 정도만 농사짓는다. 연잎을 수확하는 시기는 한 여름이 아니라 처서 지나고 찬바람 부는 요즘이다. 이때까지 버티고 있는 연잎만 따서 60여장 정도 말려 술을 빚을 때 사용한다. 연잎이 떨어지면 연근을 활용해서 술을 담그기도 한단다.

누룩도 손수 빚어 사용하는데, 보통 쓰는 밀누룩과 다르다. 밀과 녹두, 이팥, 옥수수, 엿기름, 도꼬마리 등 6개를 섞어서 띄워 연중 사용한다. 술은 단양주로 빚는데, 멥쌀과 찹쌀을 3대7 비율로 1말, 누룩을 4되, 물 20리터를 넣어 겨울에는 20일 정도, 봄가을은 14일 정도 그리고 뜨거운 한여름에는 7일 정도 숙성시킨다. 다 익은 술은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서 마시는데 대략 13도 안팎의 알코올도수가 나온다고 한다.

이 술을 마셔본 사람은 이름만 들어도 입에 침이 괸다. 첫맛에는 신맛이 강하게 덤벼들지만, 두 번째 모금부터 신맛은 이내 익숙해진다. 그리고 세 번째 모금부터 술의 쓴맛과 단맛도 구별할 수 있다.

한동안 와인 붐이 불면서 술의 신맛에 대한 우리의 경계가 다소 넓어졌는데, 신맛이 단맛과 아우러져 보다 복합적인 맛을 줄 뿐 아니라 소금간이 밴 안주와 만나 더욱 맛을 늘려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연엽주는 진안주와 만나 제대로 맛을 즐길 수 있는 우리 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술을 누른다’는 뜻의 안주(按酒) 본연의 역할을 최대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청주(주세법 상 약주)의 빛깔은 진한 갈색이다. 이 술을 전통의 방식대로 소줏고리로 내린 소주는 청주의 시큼함이 사라지고 달착지근하면서 알코올의 쓴맛이 뒤따라온다. 알코올감도 둔탁하지 않다. 품격 있는 술꾼들이 즐길 수 있는 술이다.

한편 돈을 벌기 위한 술 공장을 차릴 계획은 없지만, 참판댁은 술제조장을 독립된 다른 공간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술을 빚는 과정에서 생기는 곰팡이 등이 건물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10칸 정도의 기와집을 다른 장소에 마련할 예정이란다. 선비가 빚는 술의 명맥을 잇고자 하는 이득선씨의 또 다른 고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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